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나오자 그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의 반응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버티느냐"며 한숨을 쉬는가 하면 "그래도 이명박 정부보다는 낫겠지"하며 애써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반응의 결과 층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퇴행할 것"을 우려하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박 후보는 초등학생인 10세 때 최고통치자의 딸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 후인 27세 때 나왔다. 청소년기를 온전히 청와대에서 보낸 셈이다. 대개 인격의 상당 부분은 청소년기에 형성된다고 볼 때 박 후보가 당시 청와대에서 보고 들은 게 지금의 사고체계의 밑바탕이 됐다는 얘기다. 그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을 수렁에서 건진 불세출의 영웅으로 보고 자랐을 것이다. 유신은 불가피한 선택이라 여겼고, 인권과 민주주의는 깊이 생각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정치 입문 동기를 "아버지의 유업을 잇기 위해서"라고 밝힌 대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반기지 않는 이들의 가장 큰 걱정이 바로 이 대목이다. 집권하자마자 아버지에 대한 평가가 부당하다며 이를 바로잡겠다고 나서지 않을 지 우려한다. 설혹 본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극우보수세력들이 각종 사업을 벌이겠다고 나설 개연성이 크다. 박정희 흉상과 기념관 등 추모사업은 물론이고 5ㆍ16 군사쿠데타와 10월 유신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진보세력은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나설 게 뻔하고, 진보-보수세력간 극한 충돌까지 빚어질 수 있다. 임기 초반부터 이념 대립과 과거사 문제에 다시 발목이 잡히면서 그가 약속한 '미래'는 가물가물해질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대한 박 후보의 인식도 청와대 시절 형성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도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살아온 그에게 경제민주화는 낯설다. 그러다 보니 박 후보가 2차 TV토론에서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경제민주화가 재벌의 투자를 가로막는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경제민주화 구호는 서민들의 표를 모으기 위한 선거전략이라는 의구심을 갖게 할 뿐이다. 박 후보의 '지하경제 활성화' 발언은 YS의 그 유명한 '아름다운 지하자원'을 연상하게 해준다. 복지에 대한 인식은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가졌던 '국민에 대한 시혜'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사회통합의 디딤돌이 아닌 제왕으로서 챙겨야 할 '구휼'의 의미에 가깝다. 재벌들에게서 거뒀던 돈으로 추정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건네준 '6억원'과 기업체 회장으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성북동 자택'은 정경유착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박 후보가 보여주는 성격 가운데 핵심은 신뢰와 의리다. 측근에 희생당한 아버지를 보며 자연스레 형성된 행동규범일 것이다.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인간사회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게 배신"이라는 표현은 그러한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인물이 없다" "쓴 소리 하는 책사는 없고 측근만 남았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일단 내 편이라고 판단하면 무조건 감싸고 드는 행태를 보이는 박 후보가 과연 약속대로'탕평인사'를 엄격히 할 수 있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더구나 박 후보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이러한 우려가 더욱 커지지 않을 수 없다. 공인의식은커녕 자리와 권력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한 인물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인재풀이 이명박 정부보다 더 좁아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 후보가 보수대통합을 위해 내세운 인물들은 어떤가. 이회창 이인제 박세일 한광옥 한화갑 등의 인사들을 보면 수십 년 전 흑백사진을 돌려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에 근거와 설득력이 있는지, 아니면 박 후보를 음해하기 위해 만들어 낸 네거티브 소문인지, 그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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