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가 돌아온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의 10일자 1면 기사 제목이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6) 이탈리아 전 총리의 정계 복귀를 영화 ‘미라 2’에 빗댄 것이다. 죽은 줄 알았는데 죽지 않고 돌아왔다는 얘기다.
경제위기의 구원투수로 나섰던 마리오 몬티(69) 총리가 사의를 밝히고 반대로 이탈리아를 위기로 내몬 베를루스코니가 총리직 도전장을 던지자 유럽 각국이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로존 차원의 위기 탈출 노력이 베를루스코니의 복귀와 함께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베를루스코니의 복귀를 앞둔 유럽 각국의 착잡한 심경을 전하며 “예측 불가능한 인기영합주의자의 귀환은 유럽이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라고 전했다. 앞서 8일 몬티와 베를루스코니는 각각 사임과 총리직 도전 의사를 밝혔다.
내정간섭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공식 논평을 자제했지만 유럽 지도자들의 발언에는 깊은 한숨이 묻어있다. 귀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은 “이탈리아의 개혁 미완성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에도 혼란”이라며 몬티의 유임을 바란다는 뜻을 피력했다. 헤르만 반 롬푀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몬티는 위대한 총리”라며 아쉬워했다.
시장도 베를루스코니를 꺼리는 분위기다. 이날 이탈리아 증시는 2.2%나 하락했고 지난해 11월 몬티 총리 취임 이후 안정됐던 이탈리아 국채(10년물) 수익률은 0.3%포인트 올라 4.8%로 치솟았다. 스페인 국채 수익률도 덩달아 뛰었다.
정부와 시장이 베를루스코니의 복귀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는 그가 긴축 반대론자이기 때문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지난해 국채 수익률이 7%를 웃도는 위기에도 긴축에 반대하다 총리직에서 밀려났다. 이런 그가 집권하면 몬티가 13개월간 지출 억제와 탈세 단속 등 개혁을 착실히 이행하며 쌓아 온 대외신인도가 단숨에 무너질 수 있다. 그의 엉뚱한 성격 때문에 정책 예측 가능성도 떨어질 수 있다. 경제지 비즈니스위크는 “베를루스코니의 귀환이 유럽을 위기체제로 다시 돌려 놓았다”고 평가했다.
베를루스코니가 권력 중심에 복귀할 가능성은 높다. 그가 속한 자유국민당(PdL)은 최근 총재 선거를 취소하며 베를루스코니의 복귀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그의 영향력도 여전하다. 1994년 이후 세 차례 총리직을 수행하며 정계에 폭넓은 인맥을 쌓았고 거대 언론그룹을 보유해 여론전에도 능숙하다. 실언, 성추행, 탈세 등 숱한 추문에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은 비결이다.
베를루스코니의 복귀를 막기 위해 몬티를 붙잡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루카 디 몬테제몰로 페라리 그룹 회장과 중도성향 정치인 등은 최근 몬티에게 내년 초 총선 출마를 요청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한두 달 내 몬티 총리가 연립정부에 참여해 이탈리아를 안정시킬 것”이라 말하는 등 나라 밖에서도 몬티의 유임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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