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7층 소아 병동. 심장 속 심실벽 사이 작은 구멍으로 호흡 곤란증을 앓아오던 필리핀 어린이 라살렛(4)양은 활짝 웃고 있었다. 늘 입술이 파랬던 라살렛은 이젠 정상인과 같은 붉은 색 입술로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됐다. 라살렛과 함께 필리핀에서 온 레인(4), 세바스티안(2)군 역시 엄마의 품에 안겨 밝게 웃었다.
필리핀 극빈층 자녀들로 모두 선천성 심장 질환자인 이들은 지난달 28일 함께 한국땅을 밟았다. 건국대병원과 대한심장재단, 한국선의복지재단, 서희경 프로골퍼의 도움으로 무료 수술을 받기 위해서다. 라살렛과 레인은 3일, 세바스티안은 5일 건국대병원에서 각각 수술을 받고 회복중이다.
심장병 때문에 제대로 먹거나 뛰어 놀지 못한 아이들은 또래보다 훨씬 작다. 라살렛양의 몸무게는 겨우 9kg. 정상 체중의 절반 밖에 안 된다. 어머니 모린씨는 “우유만 마셔도 숨쉬기 힘들어하면서 토해내던 딸이 수술 뒤 식욕이 왕성해져서 좋아하는 치킨과 생선을 계속 찾는다”고 전했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 한 쪽이 비대했던 세바스티안군도 수술 후 건강을 되찾았다. 어머니 클레리스씨는 “아들이 한창 걸어 다닐 나이인데도 조금만 움직이면 숨이 차 누워만 있었다”며 “집에 가면 가장 먼저 걸음마를 가르치고 싶다”고 감격해 했다. 비서일을 하는 클레리스씨의 현지 수입은 월 7,000페소(한화 약 18만원). 심장수술에 필요한 100만 페소(약 2,600만원)는 평생 저축해도 만질 수 없는 큰 돈이지만 한국 의료진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을 선의재단에 연결해주고 한국까지 안내한 필리핀 보건소 의사 볼리(54)씨는 “빈곤층 아이들은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 치료는커녕 증세가 악화되기 일쑤”라며 “도와주신 모든 분께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네 번째 생일을 맞은 레인군도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엄마 품에 안겨 장난을 칠 만큼 몸 상태가 호전됐다. 어머니 레아씨는 “수술하는 동안 기도만 했다”며 “6일이 아이의 생일이었는데 이만한 생일선물이 어디 있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수술 집도는 2001년부터 매년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무료수술을 해온 소아심장외과 서동만 교수가 맡았다. 서 교수는 “무엇보다 수술이 잘 끝나 병동에서 아이들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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