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반도체 등 한국경제의 주력인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오히려 경기 변동성을 키운다는 우려가 나왔다. 더구나 덩치는 갈수록 커지는데, ICT 산업의 고용 효과는 오히려 쪼그라드는 걸로 나타났다. 공룡 삼성전자의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한국은행 조사국 박창현 과장과 김민선 조사역은 11일 'ICT 경기의 주요 특징과 국내 경기변동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경기변동 주기가 짧고 지속성이 낮은 ICT 산업이 급성장함에 따라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확대됐다"고 밝혔다. ICT 산업은 반도체, 전자부품, 컴퓨터, 사무기기, 통신기기 등 제조업과 방송, 전화, 초고속망서비스, 소프트웨어개발공급 등 서비스업을 가리킨다.
보고서에 따르면 ICT 산업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생산 비중이 2000년 5.7%에서 2011년 11.8%로, 전체수출 대비 비중은 23.1%에서 43.5%로 두 배 가량 늘었다. 최근 5년간(2006~2011년)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4분의 1(기여율 25.9%)을 견인, 그야말로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성장동력인 셈이다.
그러나 ICT 산업의 몸집 불리기와 집중화 현상은 국내 경기변동을 심화시키는 역효과를 냈다. ICT 산업의 경기변동성지수(5.6)는 전 산업 평균(2.4)의 두 배를 웃돌고, 경기순환주기는 외환위기 전후(14.6분기→8.4분기)로 크게 단축됐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부터 ICT 산업 생산과 경제성장률간 상관계수는 기준치(0.5)를 넘는 0.55를 기록하고 있다. 즉, 제품 수명주기가 짧아 경기변동폭이 높고 지속성이 낮은 ICT 산업의 특징이 우리나라 전체 경제로 옮아가고, ICT 산업의 부침에 따라 국내 경제가 휘둘린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도 아니다. 2000년 이후 ICT 산업은 연평균 10% 이상 성장률을 유지했고,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플러스 성장을 했지만 종사자수는 절반 수준인 5% 안팎 늘어나는데 그쳤다. 심지어 2007년과 2008년엔 종사자수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기도 했다. 또 ICT 제조업에서 10억원어치 물건을 팔 때마다 2000년에는 10명의 취업자(취업유발계수)가 생겼지만 2010년엔 6.6명으로 줄었다.
보고서는 ICT 경기의 낮은 지속성이 국내경기 전체의 지속성을 단축해 생산이 고용으로 연결되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ICT 제조업의 중간재 국산화율은 49.2%로 제조업 평균(62%)을 밑돌고, 자동차(87.3%) 철강(85.7%) 등에 비해서도 크게 낮아 고용창출 효과가 그만큼 떨어진다. 예컨대 휴대폰을 만들어 팔 때 그 가치의 절반 이상이 외국에서 발생한다는 뜻이다.
박 과장은 "ICT 제조업은 '생산→고용→생산'으로 이어지는 산업의 선순환 구조가 취약하다"며 "신흥국의 수요 급증으로 ICT 산업은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ICT의 경기변동 특징을 면밀히 분석해 경기안정화 정책을 강화하고, ICT의 경기 충격에도 적극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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