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축이 다 해어진 투박한 군화를 신고 이마에 먼지 먹은 머리카락을 함부로 휘날리는 맥파로(麥波路)씨는 배는 고프지만 거리에 대한 관심을 좀처럼 포기할 수 없는 지남공화국 시민이다.
허름한 중늙은이가 흰옷을 얌전히 입은 여인을 동반하고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소곤거린다. "자유의 나라에 축복이 있군그래." "무슨 축복인데요?" "자유가 완전히 해방될 것이래." "응?" "그래서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거든." "또 무슨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전쟁 같은 것인가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감옥이라는 중간 단계를 지나서 공동묘지로 결정적으로 비약한다는 거야." "정말이요? 그렇게 되면 자유는 점점 더 완벽성을 띠게 되겠군요." "그렇지! 여태까지는 법이라는 이십 세기 전반기적 잔재로 자유를 부당히 구속해 왔는데, 앞으로는 자유의 행사를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법으로부터 자유를 해방하고, 시대적 요청에 의해서 무장의 보호 밑에 융통성 있는 법으로 자유를 행사하거든." "자유의 종착역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군요."
밤은 자꾸 여물어 갔다. 눈발처럼 퍼붓는 어둠 속에 도깨비들의 철학은 한창 무르익는다. 자유는 칼날 위에 춤추는 광대가 되어 버렸다. 쫓기고 잡히고 마침내는 목덜미에 멍에를 인 채 끊임없는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 허덕이는 것은, 자유의 깃발 밑에 굴러다니는 피에 맺힌 선물이다.
빈혈증에 걸린 맥파로씨의 귀에 자유를 법률로부터 해방시킨 법률상이 잡혀 갔다며 의분한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자유민의 분노는 마침내 폭발하였습니다. 여러분! 질서 있게 열을 세워서 대오(隊伍)를 편성합시다." 사법부로 몰려가자는 것이다.
시민들의 자유의 노래가 끝나자 수상이 수족같이 사랑하는 자유선전상이 비대한 체구를 유유히 이끌고 '자유민의 분노'를 대변하려고 사령대에 올라섰다. 자유 완성을 위한 돌격과 수상의 노고에 감사하는 술과 식사도 제공된다. 푸른 복장의 청년들은 각기 술상을 하나씩 맡으며 이 자유를 사랑하는 시민들에게 열심히 축하의 말을 올리고 민주주의의 장애물은 마땅히 제거되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하면서 친히 시민들에게 술을 권했다.
자유의 광장은 기상이 높고 푸른 자유 애호자들의 술김으로 날카롭게 고조되었다. 자유의 광장은 차츰차츰 분노의 함성이 높아 갔다. "법률상을 석방하라!" "시민들의 자유를 신속히 보장하라!" "수상의 민주적 권력을 철저히 강화하라!"
함성 속에 드디어 사법부는 완전히 군중에 포위되었다. 사법부의 철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다. "문을 열어라!" 자유민의 아우성은 광란의 바다와 같았다. 술 한 사발과 식사 한 끼가 이렇게 위대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1950년대에는 결코 없었던 1960년대의 획기적인 정치적 발전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 무렵 기마병들은 무장을 하고 벌써 군중들 사이를 뚫고 사법부의 문전에 이르렀다. "수상의 간곡하신 요청입니다. 해산하십시오!" 기마대장의 말에 "이 자식아, 넌 누구냐? 거짓말을 말라! 문을 열어라."며 자유민들은 기마병들에게 맹렬하게 덤벼들었다. 뒤에서 날아온 주먹만 한 돌덩이가 기마대장의 면상을 사정없이 부숴 버렸다. 기마병들은 이제 해산하라고 말하지 않고 동으로 서로 거리낌 없이 왕래하며 말굽으로 군중을 짓밟았다. 하지만 그들은 굽히지 않았고 드디어 사법부의 철문을 산산이 파괴하고 만다.
가솔린 통이 터지고 연기와 불이 피어오른다. 탕! 탕! 연속으로 총성까지 울렸지만 이윽고 기마병들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보이지 않는다. 멀리 울려오는 만세 소리만 심장이 파열된 맥파로씨의 숨 가쁘게 할딱거리는 가슴 위로 밀려와서 귓밥을 물어뜯었다.
그와 쓰러진 다른 시민들은 위대한 수상의 민주적 권력 강화와 시민의 자유를 신속히 보장하기 위해서 말굽에 아낌없이 짓밟히도록 마련되어 있는 '영광스러운 역사의 개척자들'인 것이다. "오…." 맥파로씨의 마지막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멀리서 양공주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언제나 바쁜 군용 트럭과 '째스 뺀드' 소리가 요란했다. 1953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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