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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2월 11일] 1972년 12월,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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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2월 11일] 1972년 12월, 2012년 12월

입력
2012.12.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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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곗바늘을 40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정확히 1972년 12월27일에 벌어진 일이다. 이날 오전 한국에서는 유신헌법이 공포되고 제4공화국이 공식 출범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북한은 주체사상을 유일지도체계로 하는 이른바 사회주의헌법을 채택했다. 유신헌법을 통해 박정희는 국가의 운명을 한 몸에 걸머진 '영도자'로 거듭났고, 사회주의헌법을 통해 김일성은 국가주석으로서 영구불멸의 '수령'이 되었다. 때문에 한 학자는 유신체제와 유일체제가 동시에 태동한 이날을 "쌍둥이 권위주의 체제의 탄생일"이라고 명명했다.

사실 유신체제와 유일체제는 쌍둥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닮은꼴이다. 당시 미중화해라는 국제정치 환경의 대격변을 맞아 남북한 지도부는 각각 동맹국인 미국과 중국에 대한 불신과 이들로부터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공유하는 가운데 분단 이래 처음으로 직접 대화에 나서는 한편, 뒤에서는 체제 강화를 모색했다. 두 체제는 똑같이 '통일'과 '자주'를 전면에 내세우고 서로 그 '주체'가 되겠다고 맞섰다. 김일성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 '주체'라는 말은 박정희의 상투어이기도 했다. 둘은 공히 통일을 주도하기 위한 국내적 조건으로 입법 사법 행정을 통괄하는 영도자 혹은 수령의 절대 권력과 가혹한 내부통제, 노력동원을 요구했다.

이렇게 서로를 반면교사로 삼았기에 박정희 정권은 사전에 유신헌법의 취지를 북측에 알려 양해를 구했고, 북한은 이에 침묵함으로써 사실상 동의를 표했다. 이로써 남북한 지도부는 상호 적당한 긴장과 대결을 조성함으로써 각각 국내적인 '부(負)의 통합'을 통해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는 '적대적 상호의존' 관계를 구축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중화해라는 국제정치적 제약조건 속에서 남북한의 두 독재자가 암묵적으로 의기투합해 분단구조를 한층 심화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로부터 꼭 40년이 흘렀다. 오랜 체제경쟁 끝에 한국은 승리했다. 다만, 돌이켜보면 한국이 북한을 압도하게 된 것은 유신체제의 계승이 아니라 오히려 유신체제의 폐단을 잘라내기 위해 지난하게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권위주의를 씻어내고 민주주의를 강화함으로써 한국은 세계 보편에 다가설 수 있었고, 나아가 북한마저 포용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반면, 동서 냉전이 마무리되고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와중에도 북한은 유일체제를 고수, 고립과 퇴화를 자초했다. 북한은 지금도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과 '자주'를 외치지만 그것은 케케묵은 유일체제를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그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조건도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유신체제와 유일체제의 성립을 가능케 했던 미중관계의 성격이 달라졌다. 70년대 초의 미중화해는 대등한 관계 속에서 이뤄졌다기보다는 미국이 짜놓은 냉전질서에 중국이 편승한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이후 성장을 거듭한 중국은 어느덧 미국이 깔아놓은 질서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질서를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일 태세이다. 대칭적, 경쟁적 관계로 변화하고 있는 미중관계는 이제 남북한 모두에게 새로운 전략적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2012년 12월 한국은 새 대통령을 뽑는다.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40년 전 12월의 유신체제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유신체제의 환영이 자꾸 오버랩된다. 이는 무엇보다 박정희의 딸이 후보로 나섰기 때문이겠지만, 박정희식 모델 혹은 리더십이 남긴 상흔과 추억이 그만큼 강하게 우리의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박정희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박정희식 프레임이 아닌 탓이다. 한국은 40년 전 박정희의 그릇된 선택이 낳은 후유증을 민주주의를 확대함으로써 이겨내 왔다. 그 뜨거운 저력을 이제 김일성의 손자가 통치하는 북한의 유일체제조차 포섭·변혁시키고 동북아를 선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승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2012년 12월 한국은 과연 어떤 리더십을 선택할 것인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

이동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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