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on Sense)'. 1776년 1월 발간된 토머스 페인의 이 한 권의 책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당시 영국의 폭정에 시달리던 식민지 미국은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개전 초기 만해도 미국의 식자층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에 회의적이었다. 세계 최강의 국력을 지닌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란 체념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토머스 페인은 을 통해 "지금부터 나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 평범한 논의, 그리고 상식을 말하겠다"면서 영국의 군주제는 특권층을 인정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상식에 어긋난다며 미국의 독립과 공화정의 수립을 주창했다. 책이 발간된 지 반년후인 1776년 7월 4일 미국은 독립을 선포했다. 기득권층의 반발을 극복하고 결국 페인의 '상식'이 이긴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년 동안 '안철수 바람'에 큰 홍역을 치렀다. 세상을 이념의 잣대가 아닌 '상식 대 비상식'의 기준으로 본다는 안철수의 말 한마디는 토머스 페인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고도 남았다. 적대적 공존관계 속에서 견고한 기득권의 벽을 치고 있던 기성 정치권이 먼저 손을 들었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민주당은 민주통합당으로 스스로를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됐다.
안철수 현상이 남긴 유산은 크고도 강하다. 정치권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이면서 60년 넘게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패러다임에 혁명적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먼저 재벌을 공격한다. 검찰개혁 또한 거침없이 요구한다. 기득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던 한 축을 흔드니 나머지 축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그동안 하지 못했을까. 우리들 대부분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거리고 투덜대기만 할 뿐이었다. 세상을 '상식 대 비상식', 보다 정확하게는 '상식 대 몰상식'의 잣대로 판단하며 몰상식에 결연하게 맞서지는 못했던 것이다. 국민들에게 당연히 주어진 천부인권의 권리를 잠시 잊었던 것은 아닐까.
'안철수 바람'은 더 이상 나와 내 가족과 나의 노후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낡고 시들고 병든 국가운영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시대적 경고다. 물론 북아프리카의 재스민혁명, 월스트리트를 강타한 어큐파이(occupy) 운동 등 외부적 충격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 내부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욕구가 안철수란 분화구를 통해 분출된 것이다.
문제는 안철수 본인이 안철수 바람의 진원지인 줄 착각하면서 시작됐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안철수에게 안철수 바람의 독점적 사용권을 허락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안철수는 점점 나르시시즘에 빠졌다. 상식에서 출발했던 안철수가 점점 보통사람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바로 상식이라는 독선적 모습으로 변질되어갔다.
모든 사람이 한 생각일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하는 간(間) 주간적인 상식은 있다. 안철수는 상식을 뛰어넘는 초인적 행보로 일관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상식에 바탕 하여 한 걸음 앞서 나가는 지도자다. 구름 위에서 군림하려드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비극이다. 안철수 본인에게는 물론이고 안철수 바람을 통해서 새로운 변화를 갈망했던 우리에게도 비극이다.
여드레 후면 대통령선거가 있다.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 중 한 사람이 승리할 것이다. 하지만 혁명적 변화를 통해 판이 뒤집히는 것을 보고자 했던 뜨거운 열망은 싸늘하게 식어만 갈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는 앞 다투어 개혁을 말하고 소통과 민관의 협치를 약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안철수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바람은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가 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