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글에서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것은 비교적 긴 호흡의 글을 쓰면서도 논지가 흔들리거나 흐려지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분량이 길어질수록 주제가 산만해지거나 처음 의도에서 벗어나기 쉽고 같은 말을 중언부언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생의 글은 그렇지 않다. 글의 각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글의 전개가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간결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은 개요 짜기와 관련이 깊다. 분명히 학생은 글을 작성하기 전에 전체적인 틀을 잡고 세밀하게 개요를 짜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찬반 두 입장을 차분하고 공정하게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점도 눈에 띈다. 한 논점에 대한 대립하는 입장들을 나름대로 꼼꼼하게 조사했다는 점에서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논쟁적인 주장을 하면서 관련 쟁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으면 사상누각이 되기 쉬운데 그에 비하면 훨씬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술이 간명하고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에서도 성공적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학생의 글에는 이런 장점들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큰 단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학생 자신의 의견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독자가 알고 싶은 것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팩트 확인이 아니다. 학생 자신의 고유한 견해인 것이다. 글 전체를 통해 학생 자신이 주장하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다. 결론 부분의 “건전한 판단이 요구되는 때인 것 같다”는 말은 알맹이가 빠진 하나마나한 말이다. 구체적인 각론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생의 말대로라면 원자력 발전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건전하지 않은 주장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런 생각에 동의할 사람은 비록 있다 해도 극히 드물 것이다.
물론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전에 대립적인 두 입장을 소개하는 것은 가능하고 또 어느 정도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나아가 상대방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한 것이다. 찬반양론을 소개하는데 치중한 나머지 자신의 주장을 생략하고 있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격이다. 이 점에서 논술문은 설명문과 성격이 다르다. 논술문에서는 객관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자신의 주관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타당한 논거를 통해 그것을 논증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찬반양론을 두고 “극단적인 한쪽의 의견에만 치우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고 비판하며 기계적 중립을 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원전에 대한 찬반 입장이 왜 극단적 의견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인지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다. 원전에 반대하는 쪽도 지금 당장 모든 원전의 가동을 멈추자고 하는 것은 아니며, 찬성하는 쪽도 다른 모든 에너지 생산 수단들을 포기하고 원전에만 의존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합리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 민주적 절차의 기본인데 양쪽 입장 모두를 싸잡아서 “극단적인 의견”이라고 양비론을 펼치는 것은 논쟁에 임하는 성실한 태도가 아니다. 양쪽을 모두 비판하면서 제3의 대안을 제시한다면 생산적인 논쟁이 될 수 있겠지만 학생은 그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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