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마음 열고 아들과 함께 걸었죠.”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고민하다 집에 가는 걸 잊은 적도 있어요.”
포산고등학교에서 ‘철학과 곽 교수’로 통하는 곽태현(17)군은 지난 10월, 2012년도 대통령 인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2000여권이 넘는 사회과학․문학서적을 독파한 곽 군은 논어, 맹자 등 동양철학서부터 소크라테스와 니체, 사르트르 등의 서양 철학서를 완독한 덕에 2011년 16회 한국철학올림피아드 고등부 금상을 받기도 했다.
다독하되 사유하는 철학 소년으로 큰 이유
“다양한 사상을 접하며 다원성과 삶을 긍정하고 인간의 가치를 사유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매력입니다.” 곽 군은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생각하는 철학자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철학서 안에는 실생활에 적용되는 내용이 많아 힘든 일이 있을 때 좋은 글귀나 철학자들의 말에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특히 니체의 철학관과 퇴계이황의 인격은 그에게 늘 귀감이 되고 스토아학파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남긴 ‘우리의 의지(힘)에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결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두고두고 그가 새기는 말이다. 곽 군이 철학에 크나큰 영향을 받게 된 계기는 5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실중격결손을 앓던 태현이는 환자들로 가득 찬 병동에 앉아 신이 만든 세상이 왜 불완전한지, 행복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왜 저와 그들처럼 아파야 했는지 늘 궁금해 했어요.” 아버지 곽시호(54․계명대 법경대학 외래교수)씨는 “그때부터 철학적인 사고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수술 후에도 그 질문에 대한 갈증은 커졌고 이는 7살 무렵, 처음으로 동양 철학 동화를 접한 뒤 철학세계에 빠지는 계기가 됐다. 그 전만 해도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철학책을 읽으며 맹자나 니체 등 많은 철학자들이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친근감을 느꼈고 자신도 이런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2000여권에 달하는 철학서적을 읽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믿고 들으며 사유산책 함께했더니
“아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거야?” 질문만 던지던 곽 군은 점점 책을 읽고 커가며 질문대신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사상을 철학개론서로 나름대로 정리해보고 다른 식으로 해석해보기도 했다. 아버지는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스스로 정리를 하는 아들 앞에서 모든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생각에 대해 옳고 그름을 선을 긋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답을 찾게 길을 열어줬고 가끔씩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려줄 뿐이었죠.” 저녁 즈음이면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산책길에서 아들의 학교생활부터 철학자들의 생애까지 다양한 주제를 두루 화제로 삼았다. 아버지는 “태현이가 책을 많이 읽는 건 좋았지만 집념이 강한 아이라 한쪽만 파고드는 외골수가 될까봐 남몰래 걱정도 많이 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믿음과 관심만 내보이며 아들의 생각을 존중했다. 다행히 뜨거운 집념과 노력은 철학에만 한정되진 않았다. 학교 성적도 뛰어났던 곽 군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사설 모의고사에서 전국 4등, 올해 9월 평가원 모의평가에서는 대구 3등을 하기도 했다. 학원 단 한번도 다니지 않았다. 오직 본인 의지와 철학적 사고, 부모님의 관심이 있어 가능했다.
“철학은 문장해석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됐어요. 어려운 과목은 부모님이 사 준 학습법관련 책을 보고 길을 찾았고요. 가장 효과적인 건 ‘대학을 가서 내 지식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제가 늘 인지했다는 점입니다.”
곽씨 역시 공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잔소리를 해 본적이 없었다. “뭐든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해 창조한 자신만의 가치를 위해 공부해야 진짜 인재로 자랍니다.”
“철학자와 의사가 다를 이유가 뭐 있나요?”
곽군은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수시 2차 입학사정관제로 합격했다. 아버지처럼 대학 교수가 돼 철학과 학생들과 함께 사유하며 사르트르처럼 자신의 사상을 담아낸 소설도 쓰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불완전한 세상을 채우고 인간의 고통을 아물게 하는 것에 철학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삶의 의미, 질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지도록 돕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철학자가 하는 일은 의사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자신의 길에 확신에 찬 아들을 아버지는 기특하게 바라봤다. “진로가 철학분야라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지만 말리지 않을 겁니다.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거든요. 언제든지 아들의 길을 지지할겁니다.”
장아영 엠플러스한국기자
사진설명
곽시호씨ㆍ곽태훈군 부자의 다정한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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