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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View] 개혁파 총장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찾아온 파리정치대학의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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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View] 개혁파 총장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찾아온 파리정치대학의 시련

입력
2012.12.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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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이 프랑스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를 거쳐 현직인 프랑수아 올랑드까지 4명의 대통령을 연속 배출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프랑스 정치·외교 분야 엘리트의 산실이자 소수정예 교육·연구기관인 이곳은 그러나 올 한 해 거센 시련을 겪고 있다.

시작은 4월 리샤르 데쿠앵 총장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열린 세계 명문대 총장 회의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다가 호텔 객실에서 벌거벗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타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했던 뉴욕 경찰은 5월 데쿠앵이 자연적 이유로 사망했다고 결론 냈다. 프랑스 최고 지성으로 꼽히며 1996년부터 총장을 맡아온 그의 죽음에 시앙스포는 크게 동요했다.

데쿠앵은 총장 재임 중 저소득층, 이민자 출신 등 소수자 우대 입학제 및 정원 확대(3,500명) 조치로 학교의 개방성을 높였고, 졸업생 40%를 해외로 진출시켜 국제적 명문으로 발돋움시켰다. 또 정치학, 경제학, 국제관계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소를 설립, 교육뿐 아니라 연구에도 강한 학교로 체질을 개선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데쿠앵은 시앙스포에 미국 대학 방식의 경쟁체제를 도입했다"며 "그의 혁신은 고위 공무원 양성을 학교 본연의 임무라 여기는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샀다"고 평했다.

선장을 잃은 시앙스포를 덮친 또 다른 시련은 정부의 회계감사였다. 시앙스포는 예산의 절반을 정부에게서 받는 국립대학이다. 지난해 10월 이 대학의 2005~2010년 회계장부 조사에 착수한 회계감사국은 지난달 22일 "경영 실패와 무수한 잘못"을 폭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법인카드 남용, 교수들에 대한 부당한 주택대출 및 임금지급 등이 골자였다. 53만7,000유로(7억6,000만원)였던 데쿠앵의 연봉도 "너무 많은 돈이 불투명하게 지급됐다"는 이유로 도마에 올랐다.

수업료 인상에 불만스러워하던 학생들은 대학 측의 방만한 경영에 분노하며 이사회 퇴진을 요구했다. 이 와중에 주느비에브 피오라소 고등교육연구장관은 에르베 크레 전 부총장을 후임 총장으로 선출한 대학 이사회의 10월 말 결정을 무효화하고 장 게레미크 최고행정법원 부장판사를 임시 총장으로 임명했다. 게레미크는 올랑드 대통령의 국립행정학교 동기로 알려졌다. 총장 인선 과정에서 정부와 마찰을 빚어온 시앙포스는 "대학운영 방식이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조사 보고서가 나온 만큼 (크레와 같은) 대학 행정부 인사가 총장직을 맡을 수는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새 총장은 내년 1월 선출될 예정이다.

데쿠앵 시대의 종언을 우려하는 학내 여론도 적지 않다. 한 교수는 "국립대학은 봉급 근무시간 등 교수채용 조건이 엄격히 정해져 있다"며 "데쿠앵 총장이 원하는 교수를 채용하려면 지침을 어길 수밖에 없었을 텐데 회계감사국은 이를 잘못이라고 비판한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프랑수아 베를 부총장도 "데쿠앵은 비전 있는 총장이었다"며 "세계화 시대에 생존하려면 때로는 고통스러운 적응과 변화가 필요하다"며 데쿠앵의 노선을 두둔했다. 또 다른 교수는 "대학이 자율 없이 최고의 인재를 모으고 최고의 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며 정부의 간섭을 경계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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