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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2월 8일] 한글날은 우리 문화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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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2월 8일] 한글날은 우리 문화의 날

입력
2012.12.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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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엔 한글날이 공휴일이었다. 그러나 어린 학생이 한글날이라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하루 노는 날이라는 것이 중요하고, 하루 놀게 해주신 세종대왕께 무한한 감사와 호의를 가졌던 것이 다였다. 물론 그나마도 한글날이나 잠깐 생각하는 것이지, 보통의 날은 친구들과 '왜 글자는 만들어서, 글자를 배워야 하고, 그것으로 공부를 하게 만드느냐'는 푸념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그렇게 한글에 대한 애정도 증오도 잊은 채 세월은 흘렀다. 더구나 새 달력이 나오면 빨간 날부터 챙기는 직장인이 아니었기에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던 때도 별 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정명 작가의 소설 를 읽게 되었다. 소설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사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책의 뒷면에 첨가되어있는 훈민정음해례의 두 가지 문구였다.

그 첫째는,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학교 때 외웠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시점 갑자기 든 생각은, '뭐라고? 왕이 백성한테 말하고 싶은 바를 펼쳐보라고 글자를 만들었다고? 보통은 입을 막으려고 하는데 말이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인상적이었던 두 번째 문구는 '정음의 만듦은 처음부터 슬기로써 이룩하고, 힘으로써 찾음이 아니라 다만 그 소리를 따라 이치를 다할 따름'이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자신이 천재라서 만든 것도 아니고 억지로 어디서 가져다 붙인 것도 아니며 오로지 소리의 이치를 가져왔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관심이 생겼다. 어쩌면 너무도 고매한 의도와 너무도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만들었다는 말에 작가적 반골기질이 꿈틀거렸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정말 그랬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우리 문화를 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우리 문화를 창조할 도구를 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우리 지성을 쌓아갈 수단을 준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도 생각한다. 무지랭이도 노래한다. 지역, 학벌에 상관없이 우리 누구라도 꿈을 꾼다. 그것을 담아내는 것이 문화이다. 그렇기에 문화는 자유를 실현하는 장인 것이다.

그렇기에 문화는 자유를 실현하는 수단이자 결과이다. 또한 그 과정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과정이고, 문화는 창작이고 창조행위이며, 그래서 자유롭고 진취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그런데 우리 글자가 없었다면 우린 한자의 틀에 갇힌 채, 한자문화의 틀 속에서만 표현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자는 우리의 소리를 다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그렇게 구속당한 채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한글은 정말 그랬다. 그런 의도로 만들었고, 한반도인이 소리를 내는 방식과 그 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글자를 만들었다. 한글의 탄생은 우리가 말하는 그대로, 생각하는 그대로의 글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그대로 우리의 문화가 대폭발할 미래를 열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글은 가장 구체적이고도 확실한, 우리 문화의 결정체이다. 또한 한글은 우리 문화를 형성시켜주는 근간이며, 우리의 자유를 실현시켜줄 뿌리이다.

그래서 한글날은 우리 문화의 날이다. 단순히 글자의 날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고 창조해나가는 문화의 날로서의 의미를 갖기에 나는 한글날의 공휴일 지정에 대해 반가울 뿐이다.

개인적인 기쁨을 하나 더 하자면, '뿌리깊은 나무'의 방송 직후 나간 동문회에서 친구 중 한 명이 그런 말을 했었다. "네가 쓴 드라마가 잘돼서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그러자 모인 수많은 직장인 친구들이 너도나도 동의를 했다. 쉰 나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저 하루 놀아보자고 공휴일을 찬성하는 모습들이 어릴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아 그냥 웃고 말았지만, 결국 공휴일이 되어서 놀고 싶어하는 많은 직장인들의 바람 하나가 이루어진다면 그 또한 즐거운 일 아니겠는가? 어차피 문화란 놀이에서 더 많은 것이 나오니 말이다.

김영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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