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보고 떠오른 첫 생각이다. 고려 26대 충선왕(1275~1325) 이야기다. 고려사는 낯설다. 한국사에서 소외된 편이어서 연구도 많지 않다. 그나마 알려진 고려의 왕이라고는 TV 사극으로 본 태조 왕건이나 영화 '쌍화점'의 소재가 된 공민왕 정도에 그친다. 대중적인 글쓰기로 고려사를 생동감 있게 소개해 온 저자가, 우리가 잘 몰랐던 충선왕의 삶을 통해 당시 정치 사회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고려사뿐 아니라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매우 독특한 왕"이라는 저자의 설명대로, 충선왕의 생애는 특이하고 극적이다. 아버지 충렬왕은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몽골 제국 원나라 공주와 결혼했다. 무인정권을 겪으며 무너진 왕권을 제국의 힘을 빌어 일으키려고 택한 전략이었다. 이후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 됐다. 아버지처럼 원 공주와 결혼한 충선왕은 24세부터 42세까지 재위 기간 18년 동안에도 줄곧 원에 머물며 원격 통치를 하는 등 어린 시절을 빼곤 51년 생애 대부분을 어머니 나라 원에서 보냈다. 관례를 치른 15세 이후로 순수하게 고려에 머문 기간은 2년 반 밖에 안 된다.
즉위하자마자 강력한 개혁 정책을 펼치다가 7개월 만에 폐위 당해 아버지에게 왕위를 도로 뺏겼다가 되찾아 두 번 즉위한 왕이기도 하다. 고려를 비워 둔 상태에서 세자를 왕으로 세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제 손으로 세자를 죽였지만, 환국 요구가 높아지자 차라리 왕위를 내놓았다. 왕에서 물러난 뒤로는 원에 만권당(萬卷堂ㆍ만권의 책이 있는 집)을 세우고 염복, 여수, 조맹부, 우집 등 당대 문인들과 교류하며 정치와 거리를 뒀지만, 자신의 후원자인 원 황제 인종이 죽은 뒤 티벳으로 유배를 가기도 했다.
이처럼 복잡하고 파란만장하게 살다 간 충선왕을, 저자는 몽골 제국과 그 변경으로 전락한 고려를 한몸에 지닌 채 양 쪽 어디에도 뿌리 내릴 수 없었던 '경계인'으로 파악한다. 원 황실의 일원이자 고려의 왕으로서, 제국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제국의 지배력에 저항하려 했던 그의 분열적인 삶에는 당시 고려의 처지가 응축돼 있다는 것이다. 원의 황제 계승 싸움에 큰 공을 세움으로써 고려 국정을 장악할 권력을 갖춘 뒤에도 환국하지 않고 원에 남은 것은 '자발적 망명'이 아니었을까. 말년에 정치와 거리를 두고 만권당에서 다양한 인사들과 교류하며 불교에 심취했던 것도 경계에 선 데서 온 허무감과 결핍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저자가 던지는 이런 질문들이 충선왕의 생애 못지않게 흥미롭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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