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결국 부작용의 연쇄반응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와 경기, 광주시와 전남, 제주 등 전국 주요 광역시ㆍ도 의회가 잇달아 내년부터 확대 시행하는 누리과정 예산을 감당 못하겠다며 주저앉았다. 예산안 처리를 보이콧 하거나,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나선 지자체들은 정부의 전액 국고지원 없이는 아예 사업을 못 하겠다는 입장이다. 0~2세 무상보육 예산을 둘러싼 정부ㆍ지자체 갈등에 이은 이번 사태는 무리한 보편적 복지정책에 따른 행정 파행의 2라운드인 셈이다.
누리과정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3~5세 어린이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는 만5세 모두와 만3~4세 중 소득하위 70% 가정 어린이에 대해서만 지원을 했으나, 내년부턴 만3~5세 모든 어린이를 대상으로 확대 시행된다. 문제는 어린이 1인당 월 22만원씩 드는 예산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누리과정 지원 전면확대로 올해 2,100억원이었던 관련 예산이 내년엔 4,600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누리과정이 정부 사업인 만큼 예산 증가분을 부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교육과학기술부는 관련 예산 증가분을 2조6,000억원 규모의 지자체 교부금 증액을 통해 보전했다는 입장이다. 교과부는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올해보다 교부금이 1,200억원 증가했다"며 "무상급식 확대 등 다른 이유로 부족해진 재정을 누리과정 탓으로 돌리는 것 부당하다"고 밝혔다.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행정 파행은 중앙과 지자체가 언젠가는 절충점을 찾게 될 것이어서 완전한 파행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파행예산으로 인한 피해가 제로섬 형태로 운용되는 다른 사업부문으로 고스란히 이전된다는 점이다. 서울시교육청에선 벌써부터 "누리과정과 무상급식 비용부담이 과중해 교육시설 환경개선 등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정치권의 무리한 경쟁에 예산 집행 우선순위가 뒤엉키는 바람에 당장 뛰어 놀 운동장조차 없는 수많은 어린이들을 대책 없이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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