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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2월 7일] 관객은 검투사의 피 튀기는 혈전에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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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2월 7일] 관객은 검투사의 피 튀기는 혈전에 환호한다

입력
2012.12.0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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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TV를 통해 방영된 대선후보토론에서 내가 새삼 주목한 것은 '폴리페서'의 기능과 역할이었다. 그 폴리페서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린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의 언급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나는 이론에 사로잡힌 적이 없다. 나를 이끈 것은 이치와 현실이었다. 나는 전문가 특히 사회과학이나 정치학의 전문가들이 내리는 비판이나 조언은

무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배웠다."

리콴유의 자서전격인 역저 에 나오는 핵심대목으로, 폴리페서들의 진언이나 조언은 그들이 소속 대학에서 선호했던 한갓 이론에 그칠 뿐, (그 이론들이) 만의 하나 실패로 그칠 경우 그에 수반할 책임은 결코 지지 않더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번 자유토론은 그런 의미에서 리콴유가 우려한 폴리페서의 범람과 유해성을 표출한 구체적 사례로 지적될 것 같다. 세 후보가 토론을 통해 표방한 정략 정책 어느 걸 들어봐도 후보 스스로가 몸으로 체득해 육질 화시킨 정책이 아님을 유권자들은 간파한 것이다. 관객이 환호하는 건 검투사의 피 튀기는 혈전이지, 기껏 폴리페서한테서 주워들은, 몇 조각의 시범동작을 보자는 것이 아니다.

리콴유의 진단은 폴리페서에 대한 진단으로 그치지 않고 공산주의(자)를 다루는 방법에 관해서도 압권이다. 공산주의와의 협상이나 담판에 관한 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공개적인 장소로 끌어내야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리콴유는 그 구체적인 물증으로 싱가포르를 말레이연방에서 탈퇴, 1965년 독립국가로 세우기까지 (심지어는 독립이후까지) 자신을 심신양면으로 가장 괴롭힌 것이 바로 국내 공산주의자들이 밥 먹듯 되풀이 해온 배신과 변절, 보복이었음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고 있다.

이번 토론은 우리의 핵심현안이 돼 온 바로 그 북한에 관해 한마디 언급 없이 넘어간 이상한 토론이었다. 역설적으로 두드러진 점 하나를 꼽는다면 단 한 가지, 세 후보 모두의 질문 응답 수준과 그 천박함이 6학년의 반장 선거전과 방불했다는 점이다. 그 중에도 특히 여당 후보를 향한 답변을 통해 신경질 조로 터져 나온 "내가 출마한 건 당신을 떨어트리기 위해서"라던 통합진보당 여성후보의 말을 듣는 순간 나 자신을 의심했다. '여기 대한민국 맞아?'

더 가관은 그 답변 후 이 후보의 눈언저리에 남아돌던 비아냥과 냉소였다. 특정 후보를 그토록 해코지 하려 출마했다면, 하다못해 시선만이라도 당당했어야 할 것 아닌가. 고스톱도 그런 저열한 고스톱은 처음 봤다.

더욱 가증스럽던 건, 단일화의 대상으로 삼은 야당 후보를 향해서는 태도를 표변, 한 결 같이 흘려보내던 역시 아름답지 못한 웃음이었다. 대선출마라는 학업에는 전혀 뜻이 없고, 판 깨려 작심하고 출연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번 토론의 실패는 자유토론을 주관한 3개 지상파 방송에도 책임이 크다.

아무리 등록을 마친 후보라지만 기껏 0.2% 이하의 지지율에 머무는 개미후보를 40% 이상의 지지를 받는 여야 거대 후보와 맞짱 뜨도록 동석시킨 책임은 호되게 물어야 한다.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다. 안 된다고? 여야 두 후보만 출석시키면 공평에 어긋난다고?

엄밀히 따지자, 무엇이 공평인가. 성적이 뛰어난 학생한테는 100점을, 0점 맞은 학생한테는 0점을 주는 것, 그것이 공평 아닌가. 0점 맞은 학생한테도 100점을 주는 것, 그것이 공평이란 말인가.

3개 지상파 방송들의 행태는 그런 의미에서 완전히 코미디다. 그럴 코미디라면 차라리 신문사가 앞장 설 것을 권장한다. 후보들의 예의 분별력점검을 위해 후보 모두를 과거시험 보듯 한 자리에 모아, 단일 주제의 에세이를 쓰게 하라. 그리고 장원을 뽑으라. 같은 코미디라도 앞서 방송의 자유토론보다야 훨씬 설득력 있는 코미디가 될 것이다. 글이야 말로 예의 분별력을 재는 데 있어 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최고최상의 용구(用具)이기에 더욱 그렇다.

김승웅 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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