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예전 서울 경복궁은 인근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놀이시설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에, 아무 때나 넘어 들어가 놀 수 있던 왕궁의 너른 뜰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겨울이면 즐거움은 배가 됐다. 경회루 연못이 스케이트장으로 개방된 때문이었다. 임금님의 연회공간이던 경회루의 장중한 아름다움 속에서 스케이트를 타다니. 그땐 그렇게 대단한 일인 줄 몰랐지만, 생각해보면 세계 어디에도 없을 환상의 스케이트장이었다.
■당시에는 문화재 관리의식이 허술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경회루 깊은 연못에 수백 명이 바글거려도 끄떡없을 만큼 두껍게 얼음이 얼어 가능한 일이었다. 1970년대까지는 한강대교 중간의 중지도도 유명한 스케이트장이었다. 서울 어느 동네건 겨울이면 빈터마다 가마니 둘러치고 비닐 깔아 물을 채워 얼린 사설스케이트장이 들어섰다. 그만큼 추웠다. 실제로 당시 기상기록을 보면 한겨울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8도 정도로 내려가는 건 보통이었다.
■올 겨울 첫 추위가 닥치고, '한파비상' 경고에 다들 잔뜩 얼어 붙었지만 그래 봐야 서울 최저기온이 고작 영하 10도 안팎이다. 몸을 가릴 옷가지도 변변치 않았고, 난방도 제대로 할 수 없던 그때 그 시절에 견뎌낸 추위와는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따뜻하고 안락한 생활에 내성(耐性)이 떨어진 탓이다. 어쨌든 이 정도 추위도 원인을 따져보면 지구 온난화에 닿는다고 하니, 애당초 탐욕과 무절제로 자연의 균형을 깨뜨린 당사자가 불평할 일은 아니다.
■문득 고대 그리스시인 안티파네스의 우화도 떠오른다. 어느 추운 지방에선 말(言)까지 꽁꽁 얼어붙어, 겨울에 한 말을 들으려면 녹는 여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속 얘기다. 허풍이지만 마침 대선 시즌과 맞물려 의미 있게 읽힌다. 이 추운 겨울, 후보들마다 온갖 근사한 주장과 약속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국민은 한참 겪은 뒤에야 비로소 그 말들의 진정성을 알 수 밖에 없으리라는. 첫 추위에 이런저런, 두서없이 떠오른 상념들이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