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영유아(0~2세) 보육료 지원을 놓고 맞붙었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이 이번엔 3~5세 교육예산을 둘러싸고 재연되고 있다. 내년 3~5세 누리과정 지원 확대로 소요예산이 늘어나자 지자체는 "국고 지원 없으면 예산 삭감"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들고 나왔다. 예산을 일부만 편성한 지자체도 있어 내년 누리과정 지원 중단 사태도 우려된다.
5일 김명수 서울시의회 의장은 "서울시의 경우 국고 도움 없이 지방재정만으로 4,600억원이 넘는 누리과정 예산을 감당할 수 없다"며 "국가재정이 확충되지 않으면 시의회에서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013년도 서울시교육청 예산안 의결을 보류할 방침이다.
올해 5세와 소득 하위 70% 가정의 만 3~4세 유아교육비ㆍ보육료를 지원하는 누리과정은 내년부터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가정의 만 3~5세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는 내년 시교육청에 올해보다 1,201억원이 늘어난 4조5,762억원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부금)을 배정했다.
하지만 시교육청에 따르면 누리과정 확대로 늘어나는 내년 예산은 2,573억원(총 4,640억원)에 달한다. 시교육청은 고육지책으로 시설사업비 2,571억원을 줄여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했다. 이로 인해 위험한 전기시설과 물이 새는 천정 등을 고치는 교육환경개선 예산 1,235억원이 삭감됐고, 화장실ㆍ냉난방ㆍ소방시설 개선 예산은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았다.
다른 시ㆍ도교육청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내년 누리과정 소요예산은 7,851억원이지만 예산 부족으로 8개월분인 4,975억원만 편성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이마저도 도의회 교육위에서 6개월분으로 삭감했다"며 "내년 교부금이 2,419억원 늘지만 누리과정 추가 부담분보다 적어 예산 편성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광주시의회 교육위원회는 내년 시교육청 예산 중 누리과정 예산 708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위도 77억원을 깎았다.
하지만 교과부는 내년 교부금이 올해보다 2조6,000억원 증가했기 때문에 누리과정 확대에 따른 지원금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지자체는 "초·중등 교육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누리과정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행 20.27%로 되어 있는 내국세 비율을 22%까지 올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총액을 늘려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서윤기 서울시의회 교육의원은 "정부에서 다 해주는 것처럼 생색은 낼 대로 내고, 실제로는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며 "한 해에 2,500억원이 늘어나는 사업을 새로 넣으면서 재정 보전 대책을 세우지 않은 건 결국 교육청더러 아랫돌(시설사업비) 빼서 윗돌(누리과정사업비)을 괴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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