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끼리 사랑을 해도 연인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남녀 또는 이성으로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을 연인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동성이라도 서로 끌리는 마음이 있다면 연인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됐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사랑, 연인, 애인, 연애 등 네 단어의 정의가 최근 개정됐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낸 이들은 경희대생 5명이다. 권예하(21ㆍ언론정보학과 3년), 송아리(21ㆍ미술학과 3년), 전소연(19ㆍ화학과 1년), 이인석(19ㆍ경영학과 1년), 윤나라(19ㆍ미술학과 1년) 씨 등이 6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제안한 내용을 국립국어원이 받아들여 개정이 이뤄진 것이다.
이들이 네 단어의 의미를 고쳐야 한다고 판단한 건 1학기 이 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시민교육’수업이 계기가 됐다.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지난해 경희대가 교양교육을 전담하기 위해 만들었다. 인문학 중심의 교양 강좌를 강화하자는 취지다. 여기서 처음 만난 이들은 수업과제 중 하나인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제도개선’을 주목하고 이를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5명의 리더격인 권씨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사례를 찾던 중 1998년 트랜스젠더 여성이 성폭행 당했는데도 ‘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람을 부녀자의 주체로 볼 수 없다’는 판례를 보고 ‘부녀자’ 처럼 단어의 사전적 정의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차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 광화문과 시청 등지에서 서명을 받아 국제앰네스티에 전달했고, ‘사랑’을 주제로 연인, 애인, 연애 세 단어의 정의 개정을 위해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 활동도 벌였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지난달 20일 국립국어원으로부터 국민제안이 채택돼 세 단어의 뜻이 개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국립국어원은 ‘사랑’의 의미를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 마음의 상태’에서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꾸기도 했다.
권씨는 “아직도 사전엔 ‘동성연애’라는 말은 있지만 ‘이성연애’라는 말은 없다”며 “성 소수자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갖고 활동할 생각”이라고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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