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장, 닭장도 아니고 술 마시는 곳에서 흡연실을 두고 어떻게 영업을 하라는 것인지…. 함께 온 친구들 중 한 명은 담배를 피우고 다른 사람은 안 피운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로터리 인근의 한 횟집 종업원 이모(58)씨는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200㎡(약 60평) 정도의 이 횟집은 8일부터 음식점 실내 전체를 금연공간으로 지정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적용 대상이다.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은 면적 150㎡(약 45평) 이상인 일반음식점, 호프집, 커피점 등에서 흡연을 금지하고, 실내와 완전히 차단된 밀폐 흡연실만 둘 수 있다. 원래는 이 흡연실에 재떨이 외에 식탁 의자 등을 놓아 영업을 할 수 없도록 했지만, 이미 천장에서 바닥까지 유리벽으로 차단한 흡연실을 만들어놓은 커피전문점들을 감안해 2014년까지 이런 형태의 흡연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덕분에 커피전문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지만 개방된 홀 형태로 운영하는 호프집, 음식점 업주들은 볼멘소리다. 차단시설을 설치하는 비용도 부담이지만, 매출이 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인근에서 90석 규모의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주(60)는 "이번 정책은 호프집 장사를 접으라는 뜻"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손님들 80~90%가 담배를 피운다"며 "스트레스를 풀려고 술집을 찾는 것인데 이런 정책을 펴면 손님들은 차라리 집에서 술을 마시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음식과 술을 함께 팔지만 식품위생법상 일반 및 휴게 음식점으로 분류돼 있어 흡연실을 설치해야 하는 대다수 식당들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서울 종로구 당주동의 한 한식점에서 만난 한 종업원(28)은 "술을 파는 저녁 매출이 식사만 파는 점심 매출의 2배인데, 술을 마시면서 흡연을 못하게 하거나 흡연실을 따로 만들면 손님이 줄어 인건비도 남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방이 여러 개 있는 한식집의 경우는 흡연실 적용이 애매한 점이 없지 않다. 복지부 관계자는 "입구에 연기를 차단할 수 있는 유리문을 만들고 흡연실 표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음식점 대부분을 흡연실로 규정하는 편법을 어떻게 제재할 것인지 등은 앞으로 예상되는 논란이다.
형평성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식품위생법상 음식점이 아닌 단란주점, 룸살롱, 카바레, 노래방 등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된다. 당구장도 적용이 안되고 PC방은 내년 6월까지 적용이 유예된다.
흡연자들은 흡연자대로 비흡연자는 비흡연자대로 불만이다. 흡연자인 강모(48ㆍ공무원)씨는 "청소년들이 갈 수 있는 식당은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것은 맞지만 술 마시러 가는 데는 허용하는 게 맞다"며 "흡연자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어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비흡연자인 김두영(26ㆍ취업준비생)씨는 "카페 등 이미 흡연실을 만들어 놓은 곳에서도 흡연실 외 금연이 안 지켜지는 곳이 많다"며 "금연정책을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일반 식당은 청소년들도 많이 이용하는 공간이고 간접흡연과 관련된 민원이 많아 불가피했다"며 "금지나 규제정책이라기보다는 시민들 서로가 배려하라는 차원의 정책"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6개월~1년간 계도기간을 가진 뒤 본격적인 단속을 실시, 위반하는 업주에게는 최고 500만원, 흡연자에게는 최고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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