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독주 체제였던 5년 전 대선은 예외로 치자.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선 열기는 12월 추위를 녹일 정도로 뜨거웠다. 하지만 이번 대선 열풍은 예전 같지 않다. 갖가지 모임에서 대선 얘기가 오가지만 목소리를 높여 남을 설득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온라인도 의외로 가라앉은 편이다.
이번 대선 레이스는 보수와 진보 세력의 총동원 대결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이번처럼 보수와 진보 세력이 각각 하나로 똘똘 뭉쳐 선거에 임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상대 진영이 정권을 잡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양측이 정면 충돌하면 불꽃이 튀길 것 같은데, 아직까지 그런 기미는 없다.
왜 그럴까. 이번 대선이 3무(無) 선거이기 때문이다. 우선 제3후보가 없다.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단일화를 이룬 2002년 대선 때를 제외하고는 역대 대선에서 제3섹터 후보들이 총 20% 가량의 득표를 기록했다. 물론 2002년에도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3.9%의 표를 얻었다. 이는 대선 승패를 뒤바꿀 수 있는 수준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주요 변수인 안철수 전 후보가 갑자기 무대를 떠나는 바람에 선거 열기가 식고 있다. 안 전 후보는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 23일 후보직을 사퇴할 때까지 항상 대선의 상수 또는 최대 변수로 거론돼 왔다. 그는 가상 양자 대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접전을 펼쳤고, 야권 후보 단일화 경쟁에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시소게임을 벌였다. 그런 후보가 갑자기 중도 하차를 선언했으니 관전자들의 관심과 흥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물론 안 전 후보는 대선 막판까지도 변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문 후보를 얼마나 돕느냐에 따라 문 후보의 지지율 상승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대선 기간에 들어서도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적극 지원할 경우의 대결 구도'를 가정한 여론조사가 이뤄질까.
그러나 제3후보의 퇴장은 표면적 이유일 뿐이다. 오히려 중요한 이유는 '주연이 사라진 선거'라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연극ㆍ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제대로 해야 흥행이 되는데, 아직까지 그런 주연은 없었다. 선거 기간 초반에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이름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이 자주 등장했다. 유력 후보들의 자질, 능력, 리더십을 둘러싼 논쟁보다는 후보의 출신 배경과 과거사가 주된 논쟁거리였다는 뜻이다. 선거가 옆길로 흐르게 된 것은 유력 후보 양측이 선거 프레임 설정 전략에 너무 매달렸기 때문이다. 박 후보 측은 일관되게 '노무현 정부 실패론'을 꺼내 문 후보를 흠집 내려 했다. 반면 문 후보 측은 '과거 대 미래' 구도를 설정하려다 도리어 '박정희-노무현' 구도 속에 갇혀 버렸다. 이런 가운데 두 후보 측은 사퇴한 안 전 후보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더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번 선거처럼 주연이 아닌 사람들이 무대에 오래 머문 적은 과거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눈에 띄는 시대정신 논쟁도 없다. 두 후보가 우리 사회 미래의 방향을 놓고 진지하게 논쟁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국민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 대선의 최대 관심사는 일자리 창출과 복지 확대, 경제민주화, 정치 쇄신, 국민 통합 등이다. 양측이 이런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시대정신 논쟁 부재의 일부 책임은 언론에도 있다. 한 후보는 최근 "정책에 대해 많이 얘기했는데도 언론을 보면 단일화니 당내 갈등이니 하는 기사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두 후보도 자신의 가슴으로 비전과 정책을 만들어내고, 이를 놓고 심층 논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대선이 딱 2주일 남았다. 남은 기간 주도적으로 미래를 얘기하는 후보가 상승세를 탈 수 있다. 진짜 주연답게 뛰어야 승리의 고지에 오를 수 있다.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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