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문신 스캔들 러 성악가 하차… 타이틀롤 맡아 "로또 당첨" 반응도이미 2016년 후 일정까지 꽉 차"레퀴엠은 종교곡 중 절정의 작품 1년6개월 만의 고국공연 감동 선사"
이보다 더 극적일 수는 없다. 오페라에서 주인공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무대에 서지 못할 때 대신 출연하는 '커버'를 맡았던 성악가는 공연 나흘 전 주인공의 하차 소식을 듣는다. 최종 리허설까지는 불과 6시간. "당황할 시간조차 없이" 무대 위 동선을 30분 만에 익혀 리허설을 무사히 마친 성악가는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 개막 공연에 주인공으로 출연해 큰 호평을 얻는다. 이후 세계 무대에서 입지가 달라졌음은 당연한 수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인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41ㆍ윤태현)씨가 1년 6개월 만에 고국 무대에 선다. 그는 지난 7월 바그너의 음악극만 공연하는 유럽의 대표적 음악 축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나치 문양 문신 스캔들에 휘말린 러시아 성악가 예프게니 니키틴을 대신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타이틀롤을 맡았다. 6,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모차르트 '레퀴엠' 공연에 출연하는 윤씨를 3일 만났다. 그는 인생 최대의 기회가 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당시를 "공황 상태"로 기억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는 3년째 '로엔그린'의 헤어루퍼 역으로 출연하고 있었어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네덜란드 선장 역은 오랫동안 바라던 역할이었지만 정말 출연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제 매니저는 '로또 맞았다'고 표현하더군요."
물론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 그가 갑작스러운 출연 제안을 용기 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 "피부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999년부터 전속 가수로 활동해 온 독일 쾰른 국립극장에서 지난 5월 같은 역으로 무대에 올라 현지 언론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한국 음악팬은 바이로이트 무대에 서기 시작한 2004년부터 큰 관심을 가져 주셨지만 바그너 전문 가수로 본격적으로 주목 받게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베르디 음악원 졸업 후 호기롭게 옮겨 간 독일 쾰른 국립극장에서도 입단 초기에는 단역만 전전했다. "98년부터 고수해 온 꽁지머리 헤어스타일을 전에는 바꾸라는 연출가가 많았는데 요즘은 제 개성으로 인정해 주는 것만 봐도 입지가 달라지긴 했나 봐요.(웃음)"
특히 이번 바이로이트 공연 이후로는 런던 코벤트 가든, 도이치오퍼 베를린,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등 세계 주요 극장의 출연 제안도 쏟아져 이미 2016년 일정까지 꽉 차 있다.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성악가 대열에 합류한 그는 이번에 고국 팬에게 들려줄 모차르트의 미완성 유작 '레퀴엠'을 "종교곡 중 절정에 이른 곡"으로 설명했다. "현실적 비참함과 슬픔이 담겨 있으면서도 음악적으로 아름답죠. 신앙적 고백 성격을 띤 가사를 알고 들으면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니벨룽의 반지'의 보탄 역 등 꿈의 배역을 모두 따낸 현재 그의 꿈은 무엇일까.
"특정 무대와 배역을 목표로 삼았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힘이 돼 주고 싶습니다. 인생의 비전이 아닌 성악가로서의 목표만 향해 달린다면 연중 10개월을 외유해야 하는 이 삶을 어떻게 견디겠어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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