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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 경쟁이냐 협력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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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 경쟁이냐 협력이냐

입력
2012.12.0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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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영국 유학 시절, 학과 대학원생들과 함께 처음 간 펍에서의 실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각자 돈으로 자기 마실 것만 산다고 알고 있던 이 서울 촌놈은 다른 학생이 권한 맥주 한 잔을 얻어먹고는 피곤하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나중에 알게 된 영국의 술 문화에 따르면 각자가 새 술을 주문할 때 잔이 비어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술을 한잔 사는 것이 예의였다. 따로 순서를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서로에게 술을 돌리다 보면, 술자리가 끝나갈 때는 대략 비슷한 정도로 술값을 내게 되는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약삭빠른 사람들은 술 마시는 속도를 조절해서 남에게 대접만 받고, 자신은 베풀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도 가능하다. 내가 무지해서 했던 행동처럼 말이다.

'현대는 경쟁 사회다'라는 명제에 반론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협력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 손해보고, 경쟁하고 남을 이용해야 성공한다는 주장이 뭔가 불편은 하지만 말이다. 생태계 연구의 기반이 되는 다윈의 진화론은 이런 믿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잘 이용된다. 다윈 이론의 근본 아이디어에 따르면 개체들은 변이를 통해서 조금씩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자연선택' 이라는 필터과정을 통해 환경에 잘 적응한 놈들이 자손을 많이 남기게 된다. 다윈의 뒤를 이은 스펜서와 같은 학자는 '적자생존'이라는 좀 더 무서운 용어를 사용했고, 대중들은 이를 '약육강식'이라는 단순한 방식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사회에 위험하게 적용되어 제국의 식민지 침탈이나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는 강한 것이 절대선이고, 이기적인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 믿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과연 협력하며 사는 세상은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이나 이상주의자들의 꿈에 지나지 않을까?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협력과 이타성은 생태계 존재의 필수조건이다. 우리 세포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미토콘드리아도 아주 오래 전에 외부에서 유래한 세포가 우리 세포와 협력해서 안정화 된 것이다. 세포의 문제가 너무 단순해 보인다면, '죄수의 딜레마'로 알려진 게임 이론의 경우를 보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여기 참여한 개개인은 상대방을 배신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그런데 만일 이 게임이 한번이 아니고 매일매일 벌어지는 일이라면 어떠할 것인가? 반복되는 게임에서는 배신보다는 협력이 더 좋은 전략이다. 생물들은 자기와 가까운 유전자를 가진 친족들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혈연선택이라 부른다. 인간이 유지하는 복잡한 사회체계에서도 협력과 이타성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좋은 평판 그리고 집단을 위한 희생이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생식 성공률을 높인다. 또 인간은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어느 생물들도 이루지 못한 정보 공유를 실현하고 있는데, 이런 사회적 활동의 근저에는 협력과 이타적 기작이 내재되어 있다. 오래 전 다윈이 제안했던 진화의 기작은 단순한 경쟁뿐 아니라, 이타적이고 협력하는 개체나 집단의 성공을 고려해야만 성립되는 개념이다.

선거장에 가서 투표하는 행위도 대표적인 이타적인 행동이다. 왜냐하면 귀찮게 투표장에 가는데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내가 던진 한 표가 나에게 주는 단기적 효용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평판을 높게 만드는 행동일 뿐 아니라, 내가 속한 혈연 혹은 집단의 존속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나에게 이익으로 돌아오는 행동이다. 투표소 앞에서 인증샷을 올려 남에게 보이거나, 선거 결과가 개개인에게 큰 영향이 있다는 점을 널리 알리는 것 등이 투표 참여를 증대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인 이유다. 얼마 후 있을 대선 선거장에서 우리 국민들의 높은 이타성을 직접 관찰하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투표장 가는 것은 장기적으로 나에게도 이익이 되는 사회적 협력 행동이다.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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