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됐다. 드디어 풀려났다. 그간 고생 많았제."
"아이구 오빠야, 오빠야…"
지난 1일 오후 부산 연제구에 사는 박현애(47)씨는 그렇게 기다리던 오빠로부터의 전화 한 통을 받았지만 울먹이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는 지난해 4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 감금됐던 제미니호 선장 박현열(57)씨의 여동생이다. 오누이는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박씨 등 피랍 제미니호 선원 가족들은 582일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같은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간 석방될 것 같다는 소식이 대여섯 차례 전해졌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피랍된 가족의 전화를 기다리면서도 막상 통화를 한 후에는 고통만 커져갔다. 박씨는 "오빠와 통화하면서 '해적들이 총을 겨누고 있다. 협상이 안 되면 한 명씩 죽일거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놨다. "30여년 전 오빠가 가족들을 위해 배를 타야 했던 옛일을 떠올리면서 참 많이 울었다"는 박씨는 "오빠가 돌아오면 흰쌀밥과 된장국을 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1등항해사 이건일(63)씨의 부인 김정숙(59)씨는 "외국인 선원들은 풀려나고 우리 선원들만 다시 납치된 뒤 2개월 동안 모든 소식이 끊겼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울먹였다. 해적들은 지난해 11월 싱가포르 선사로부터 돈을 받고 한국인 선원 4명을 제외한 나머지 21명의 선원과 선박을 석방했다. 김씨는"석방되자마자 먼저 가족의 안부를 묻는 남편의 목소리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며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제미니호 선원들은 구출 직전까지도 위험한 순간을 맞았다. 김씨는 "해적들이 선원들을 풀어주기로 한 바다에 빠트리고 갔는데, 비바람이 너무 심해 보트가 물살에 떠내려 갔다고 들었다"며 "선원들이 파도에 휩쓸리고 있을 때 다행히 함대가 나타났고 곧 헬기가 떠서 구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기관장 김형언(58)씨의 부인은 "그동안 관절 등 몸이 많이 상했다고 해서 걱정된다"면서도 "피랍 선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국민들이 도와주실 것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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