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도 강령도 없는 느슨한 모임트위터 기반, 현안 새롭게 사유 누군가 제안에 공감한 문인들의 게릴라활동·플래시몹에 가까워쌍용車 해고자 북콘서트로 첫발고통받는 이들의 낭독 들으며 경청과 연대의 소중함 새삼…강정마을 평화도서관 만들기 등 독자들 호출해 내 세상 바꿀것'1219' 붙인 의미는대선 투표일에서 숫자 따와 당장 시급한 것은 정권교체척박한 시대 작가로 살아가려면 공공의 영역 에 내 몸 내놓을 필요
"이곳은 아우슈비츠다. 민주주의의 아우슈비츠, 인권의 아우슈비츠, 상상력의 아우슈비츠. 이것은 과장인가? 문학은 한 사회의 가장 예민한 살갗이어서 가장 먼저 상처입고 가장 빨리 아파한다. 문학의 과장은 불길한 예언이자 다급한 신호일 수 있다." 용산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언론탄압 등이 이어졌던 2009년, 젊은 문인들이 '6ㆍ9작가선언'을 통해 격렬한 언어로 고발했던 대한민국의 현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새 시대를 열겠다며 달콤한 약속을 내뱉고 머리를 조아리는 동안에도, 지상에서 설 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하늘로, 하늘로 오르고 있다.
3년여 전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없어서 모였다"던 젊은 작가들이 '선언'을 넘어 '행동'을 내걸고 다시 모였다. "우리가 문학을 추구하는 이유가 결국 다른 세계를 향한 꿈 때문이라면, 우리는 현실에서도 다른 세상을 위해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실은 관심으로 쓰는 문학입니다." 시인 함성호 김선우, 소설가 전성태 등이 트위터에 '작가행동1219'란 이름으로 '제언'을 띄운 것은 지난달 22일. 대선 투표일에서 따온 저 숫자 탓에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눈길도 없지 않았지만, "특정 후보 지지가 아니라 정치를 새롭게 사유"하자는 취지에 공감해 "각자의 트위터에 정치적 문장을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남기"는 작가들이 하나 둘 늘었다. 그렇게 첫 발을 뗀지 한달 남짓, '작가행동1219'는 간판이 무색하지 않게 많은 '행동'들을 이어왔다. 지난 13일과 27일 각각 쌍용차 해고노동자, 재능교육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북 콘서트를 열었고, 21일엔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벌이는 제주 강정마을을 찾아 '평화도서관 만들기' 사업을 제안했다.
'작가행동1219' 첫 제안자 중 한 사람이자 연락, 행사 준비 등 궂은 일을 맡고 있는 소설가 백가흠(38)씨를 만나 그간의 활동과 향후 계획 등에 관해 들었다. 그는 "대선 이후에도 지치지 않고 오래 활동을 이어갈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직도, 집행부도 없는 이 느슨한 연대 모임이 단기간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킨 데는 역시 '6ㆍ9 작가선언'의 경험이 큰 몫을 했다. 당시 '선언'에 연대 서명한 188명의 작가들은 "이명박 정권 1년 만에 대한민국은 1987년 이전으로 후퇴해버렸다"고 개탄하면서 용산참사 현장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는가 하면, 헌정문집 를 냈다. 이를 계기로 한동안 잊혀졌던 '문학과 정치' 담론이 활발히 논의되기도 했다. 백씨는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6ㆍ9작가선언'은 지속적인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작가행동1219'는 이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6ㆍ9작가선언'이 무엇이 문제였나.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작가들이 시국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릴레이 시위도 얼마 안가 흐지부지됐다. 거칠게 말하면 최소한의 작가적 양심은 지켰다는 '자기 위안' 퍼포먼스에 그쳤다. 용산참사를 정점으로 한 폭압적 시대에 대한 무기력감은 '선언' 이후 쌍용차 옥쇄파업 폭력진압과 해고 노동자ㆍ가족 23명의 죽음 등이 더해지며 한층 짙어졌다. 이걸 극복하려면 작더라도 어떤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지속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작가행동'이 신용목, 김민정 시인과의 술자리에서 태동했다고 들었다.
용목이는 동갑내기에 마음 잘 통하는 친구이고, 민정이는 두 살 어리지만 오지랖 넓고 현명한 누님 같아 우리가 많이 의지한다. 셋이 한 동네 살며 자주 술자리를 갖긴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술 먹다 나온 얘기는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강정 문제만큼은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민정이의 제안으로 고민을 시작했고, 오랜 고민 끝에 가까운 선후배들을 규합해 발기인 10명의 이름으로 '작가행동1219' 제안 글을 띄웠다.
-"우리의 무기는 문장"이라고 밝혔던 '작가선언'과 비교하면, '행동'을 간판으로 내건 것부터 도발적이다. 언뜻 문학과 동떨어진 얘기로 들릴 수도 있는데.
글로 쓰는 것만이 문학이 아니라는 생각이 바탕이 됐다. 작가는 오래 전부터 개인과 사회의 소통을 위한 매개자 역할을 자청해왔다. 그렇다면 글만이 아니라 작가의 말, 작가의 행동도 다 문학의 범주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작가의 삶에서 어디까지가 문학이고 어디부터가 개인적 삶인지 구분하기란 대단히 어렵고 무의미한 일이다.
-왜 트위터를 기반으로 했나. 글이 계속 쌓이는 카페나 블로그와 달리 강물처럼 죽 흘러가 버리는 트위터에서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텐데.
트위터에도 띄웠지만, '작가행동1219'는 일정한 조직이 아니다. 집행부나 강령, 미리 정해진 중장기 활동계획 같은 것도 없다. 우리의 '행동'은 누군가의 제안에 공감한 사람들이 참여해 엮어내는 게릴라 활동, 혹은 문학적 플래시몹에 가깝다. 트위터에서 공감하는 글을 내 타임라인에 리트윗 하는 것과 똑같다. 물론 실무를 맡은 사람끼리는 수시로 메일과 전화로 소통하지만 몇몇 사람이 주축이 돼 뭔가를 기획하고 지시하고 사람들을 동원하는 낡은 방식은 이제 먹히지 않는다. 지금은 자유롭고 자발적인 움직임이 중요하다.
'작가행동1219'은 지난 13일 홍대앞 롤링홀에서 연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함께하는 북 콘서트'로 '행동'에 시동을 걸었다. 김연수 김애란 백가흠 한강 등 소설가들의 작품 낭독에 이어,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씨의 부인 이자영씨가 무대에 올라 지난날의 고통을 편지 글 형식으로 털어놓았다. "저는 저의 고통을 비판 없이, 있는 그대로 들어주신 분들 덕에 되살아났습니다. … 제 얘길 숨소리 하나 안 들리게 들어주신다는 게 저한테는 저의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흡수해주는 것 같아 더할 나위 없는 위로를 받고 무한한 힘이 되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경청'이고 그것이 연대의 첫 걸음임을 느끼게 해준 자리였다.
지난 27일 정동 성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의 카페 산 다미아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시 콘서트'가 열렸다. 초대손님이었던 재능교육의 노동자가 투쟁 일정 탓에 참석하지 못한 가운데, 국제전화로 연결한 재독 시인 허수경을 비롯해 성기완 신용목 김민정 서효인 등의 시 낭송과 좌담이 이어졌다. 사회를 맡은 함성호 시인은 마무리 인사를 이렇게 전했다. "저는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한 개인은 호출할 수 있습니다. 이 호출과 호명이 이번 콘서트의 전모입니다." 이 시대에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되새기게 한 자리였다.
새로운 사유의 결과물을 들고 투쟁의 현장을 찾는, 더 적극적인 '행동'도 이어졌다. 지난 21일에는 25명의 작가들이 제주 강정마을을 찾아 '강정마을 평화도서관 만들기' 사업을 제안했다. "저들이 지배와 패권과 전쟁의 마음으로 이 마을을 무장시키는 것에 맞서, 우리는 희망과 평화와 연대의 마음으로 이 마을을 무장시키고자 합니다. …우리는 '강정마을에 도서관'을 짓지 않고 '강정마을을 도서관'으로 만들 것입니다. 빈집을 청소하고 있는 집을 수리하고 그 옆을 이어 마을 전체를 도서관으로 만들 것입니다." 강정지킴이 문규현 신부는 "예술가는 예언자다. 강정 투쟁의 종착점은 작가들이 만드는 도서관이다"고 화답했다. 함성호, 김선우 시인이 작가모임 준비반장을 맡고, 내달 15일까지 주민모임, 시민모임을 결성해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자신의 책을 지속적으로 기증하는 등의 방법으로 힘을 보태겠다고 밝힌 문인들이 벌써 300여명에 이른다.
30일 평택 쌍용차 철탑농성 현장에서 열린 '문화예술인의 밤'에선 지지와 연대의 글귀를 적은 색색의 깃발이 나부꼈다. "여기 지상이 아닌 허공에서 한 뼘씩 길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시인 이시영) "자본보다 법보다 더 힘이 센 건 모래알들의 연대다."(시인 김사이) "땅은 늪이 되어가고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간다. 내일로 길을 내려고."(시인 이성미) 무한한 상상력을 낳는 연대의 힘을 확인한 자리였다.
-대선이 코 앞이다. '1219' 꼬리표를 뗀 뒤 활동 계획은.
트위터나 메일 등을 통해 제안을 받고 있다. 조만간 언론을 주제로 세 번째 북 콘서트를 열고, 대선이 끝난 뒤엔 쌍용차 노동자, 강정의 활동가 등을 초대해 일일호프를 열 계획이다. 연대의 뜻을 다지고 향후 활동 방향도 터놓고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거의 일주일 단위로 숨가쁘게 '행동'을 이어왔는데, 내년에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줄이되 내실을 다져갈 생각이다. 그 중 하나로 2월쯤 강정마을에서 문학캠프를 열까 한다. 유명 대중음악 작곡가와 강정 평화콘서트 개최도 논의 중이다.
-제안문에 '특정 후보 지지가 아니라'고 밝히면서도 '1219'을 붙인 이유는 뭔가.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기 전이라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썼지만, 당장 시급한 것은 정권교체다. 쌍용차나 강정 등 산적한 현안들을 풀어나가려면 먼저 새누리당의 집권부터 막아야 한다.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으면 문제 해결의 희망 자체가 사라진다.
-정권교체가 되면 뭔가 해냈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활동이 흐지부지되지 않을까.
나와 몇몇 작가들이 고심 끝에 문재인 후보 캠프의 멘토단에 이름을 올렸다. 개인적으로 그분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민주통합당이 집권할 경우 작가적 양심을 걸고 강정 등의 문제 해결을 더 강하게 압박하기 위한 입지를 확보해 둔다는 목적도 있었다. 어설픈 타협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끝내 등을 돌린다면 또 실패한 정권이 되고 말 것이다.
-작품으로 얻은 작가의 명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비판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작가의 명성이 우리에겐 무기다. 함성호 시인의 말처럼 작품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호출해냄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 미약한 힘이나마 숨기지 않고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한테 가장 필요한 것은 고정 독자가 아주 많은 유명 작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것이다.
-한숨 돌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보자. 어릴 적부터 작가를 꿈꿨나.
아버지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나온 '문청'이셔서 어려서부터 책만 보고 자랐다. 나와 남동생(문학동네 편집자 백다흠)은 문창과를 갔고, 여동생도 영문학을 전공했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데 참 좋은 도시에서 컸다고 여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는 게 아니라, 문학적 소재가 풍부하다는 의미다. 삭막한 공단 도시인데다 원주민들이 빠져나간 구도심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속속 모여들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원불교의 성지로 기독교와의 종교 전쟁 역사도 깊다. 작품 쓸 거리가 진짜 많다. 등 3권의 소설집, 올해 낸 첫 장편 등 모든 작품이 다 이 공간에서 나왔다.
-한창 때의 작가 치고는 과작(寡作)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2001년 등단했으니 3년에 한 권 꼴로 책을 낸 셈인데 딱 적당하지 않나. 다른 작가들에 비하면 적게 썼는데, 솔직히 못 따라가겠다. 리얼리즘 작가의 소설은 가까운 과거에 마무리된 어떤 현상을 다뤄야 하는데, 우리 사회엔 5년, 10년째 진행형인 일들이 너무 많다. 작가들도 준비가 안돼 있다. 작품의 순도를 유지하려면 1년에 단편 한두 편 내는 것이 적절한 수준이 아닐까 싶다.
-그 정도면 작품 써서 먹고 살긴 힘들지 않나.
그래서 문화예술정책이 중요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지원은 하되 개입하지 않고 결과물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다양한 지원 정책을 시행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모조리 없앴다. 문화정책 자체가 아예 없었다고 보면 된다. 처음에는 몰라서 못하는 줄 알았지만, 실은 '좌파 척결'을 앞세운 의도적 배제였다. 그러고는 이제 와서 예술인복지법 만들고 복지재단을 설립했는데, 이게 한마디로 쓰레기다. 4대 보험 중 산재보험만 가능하고 보험료를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해 실효성이 없다. 창작지원예산이 턱없이 적을뿐더러 자격요건이 까다로워 진짜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정권 바뀌면 다 폐기처분하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작가행동'에 참여한 작가들 가운데도 현실에 대한 관심을 문학의 자양분으로 삼는 정도에서 구체적인 실천에 나서야 한다는 분들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할 텐데.
개인적인 생각만 얘기하자면, 공공의 선은 확보된 사회가 됐으면 좋겠고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작가가 일정한 역할을 하려면 글만 써서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남미의 파블로 네루다, 바르가스 요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가깝게는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우리 문단에서 끊임없이 시대에 저항하며 투쟁했던 선배 작가들의 삶을 보라. 예전엔 그분들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작가로서 살아가려면 내 몸을 공공의 영역 안에 내어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용목이랑 민정이랑 '작가행동'을 고민하면서도 그랬다. 작가로서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할 것 같다고.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작가의 삶이 그렇게 힘겹다면 작가 되겠다는 말, 섣불리 할 수 없겠다.
강정에 갔을 때 문규현 신부님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분이 하느님을 믿기에 더 외롭지 않을까 싶었다. 나 역시 문학을 하지 않았다면 외롭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요즘 대학에서 강의하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학생들과 함께 읽고 있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바다로 나간 지 84일 만에 잡은 청새치가 상어떼에 살점을 뜯겨 뼈만 앙상하게 남은 뒤에도 끝내 낚시줄을 놓지 못한다. 신부님에겐 하느님이 낚시줄이고, 내겐 문학이 낚시줄인 셈이다. 그걸 붙들고 있는 게 잘 하는 건지 아닌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더 배우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선임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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