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죽은 대통령들에 대한 저주의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진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모독하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진영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무덤에 침을 뱉고 있다. 죽은 대통령을 영웅으로 부활시키려는 낭만주의적 행태도 역사를 뒷걸음치게 하는 것이지만, 정치적인 승리를 위해 이들을 부관참시하는 것은 더욱 안될 일이다. 산 자는 어디로 숨고 죽은 자들끼리 선거를 치르게 하자는 것인가.
새누리당의 김무성 중앙선대위원회 총괄본부장은 얼마 전 "권력형 부정부패의 사슬이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 구속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부정해 그걸 감추기 위해 자살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여기에 민주통합당 후보 진영의 안도현 공동선대위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가 왜 총에 맞아 죽었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막말 수준이 아니다. 이들 모두 한 인간,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발언을 했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매우 치졸하다. 이렇듯 승리를 위해서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도 전략으로 써야 할 판이니, 이제 못할 짓이 아무것도 없다는 각오를 보인 것이나 다름없다. 이래서야 전직 대통령들이 하늘나라로 온전히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 판이다.
하긴 정치판에서 인간적인 예의 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지 오래다. 정치적 수단이 선거승리라는 목적을 정당화 해온 것이 정치판의 관행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당의 위원장이니 본부장이니 하는 중책을 맡은 인물들의 설단(舌端)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게다가 안도현은 시인이란다.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 질수록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전직 대통령의 망령에 쫓기는 신세처럼 보인다.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 망령에,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비서실장)였다는 사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우리 역사에서 박정희와 노무현의 시대정신은 각각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결 구도를 형성해왔다. 이 구도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보수와 진보, 반민주와 민주의 대결을 고착화 하고 있다. 이러한 대결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선거철만 다가오면 이들 전직 대통령에 대해 각각 공(功)과 과(過)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 사회가 잊어버린 것이 안타깝다. 박정희는 산업사회를 이루어냈으나 민주주의를 고사시켰다. 반면 노무현은 민주화를 완성하고 세계화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평가를 받았으나 결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김호기 교수의 저서 이 참고가 될 듯 하다. "박정희 시대는 고도성장을 가져온 산업화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정경유착이 이뤄지고 인권탄압이 가해진 권위주의의 시대이기도 했다. 더불어 박정희 시대에 뿌리내린 성장지상주의와 군사문화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 심층의식의 일단을 이루고 있다. 노무현 시대는 민주화 시대와 세계화 시대가 극적으로 교차하는 막간에 놓여 있었으며, 그러기에 민주화와 세계화가 충돌하는 긴장과 모순들에 내내 대면해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최선을 다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
역사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면 공정한 평가는 사라지고 서로에게 적대감만 남게 되는 문제가 있다. 김 교수는 "과잉 정치화한 역사 해석은 현재를 과거에 지나치게 묶어 두게 한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볼 때, 역사의 해석에서 반드시 합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역사를 보는 눈은 복수(複數)일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 후보들이 지금처럼 과거 회귀적, 퇴행적 공방에 매달릴 경우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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