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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더이상 '기사들의 족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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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더이상 '기사들의 족쇄' 아니다

입력
2012.11.3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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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신사' 해군이 내년부터 프로 기사를 '바둑병'으로 선발, 군 장병 및 지역 주민을 위한 바둑 보급 활동에 적극 활용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올해 비씨카드배와 아시아TV바둑선수권대회서 우승했고 명인전 결승에 오르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백홍석(26 · 랭킹 8위)을 비롯, 윤준상(25 · 12위), 허영호(26 · 15위) 강창배(26 · 71위) 등 상위권 기사 네 명이 내년 1월에 나란히 해군에 바둑 특기병으로 입대한다. 얼마 전 LG배 결승에 오른 원성진(27 · 랭킹 5위)도 내년 2월 중국 스웨와 결승전을 치른 후 곧바로 해군에 지원, 입대할 예정이다.

해군 '바둑병'은 평소 정훈 업무를 수행하면서 바둑 특기를 활용해 각 부대에 개설된 병영 바둑 교실이나 바둑 동아리 활동을 통해 동료 장병과 지역 주민들에게 바둑 교육을 하면서 자기 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 특히 국내외 기전에 최대한 출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것으로 알려져 군 복무 중 실전 대국 기회를 갖지 못해 기량이 쇠퇴할 것을 우려했던 젊은 프로 기사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다른 스포츠 종목과 마찬가지로 프로 기사들에게도 군대 문제가 큰 고민거리. 10대까지는 매우 촉망받는 유망주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한창 기량이 성장할 20대 초반 군대에 갔다 온 뒤 실전 감각이 둔해지고 기량이 퇴보해 결국 승부의 뒷전으로 물러난 불운의 천재들이 한 둘이 아니다.

2005년 랭킹제가 시행된 이래 지금까지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 10위 안에 복귀한 기사는 단 한 명도 없다. 유일하게 조한승이 2009년에 입대했지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 1년 만에 전역, 한국기원에서 프로기사로 근무하면서 잔여 복무기간을 마쳤으므로 온전하게 현역 복무를 한 것은 아니다.

11월 현재 랭킹 10위권 기사 가운데 개인적인 사유로 병역을 면제 받거나 (이세돌, 김지석, 강동윤), 세계 대회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병역특례 적용을 받은 사람(박정환, 최철한, 조한승, 박영훈)이 무려 일곱 명이나 된다. 나머지 세 명(원성진, 백홍석, 김승재)은 아직 미필이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군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상급 기사로 살아남기 어렵다는 냉혹한 현실을 말해 주는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프로 기사가 병역 특례 혜택을 받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 과거 바둑이 문화 예술로 간주됐던 시절에는 그래도 좀 나았다. 후지쯔배나 응씨배 등 권위 있는 세계대회서 준우승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 병역 특례 대상이 됐다. 이창호, 최철한, 박영훈, 박정상, 송태곤 등 5명이 이 규정에 따라 4주간 기초 군사 훈련을 받은 후 한국기원에서 프로 기사로 근무하면서 군 복무를 대신했다.

그러나 바둑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체육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면서 오히려 프로 기사 병역 특례 적용의 문이 좁아졌다. 다른 체육 종목과 같이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올림픽 3위 이내 입상의 경우에만 병역 특례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규정이 바뀐 것.

바둑이 가까운 장래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사실상 병역 특례 대상 기가 아시안 게임 하나로 줄어든 셈이다. 그래도 다행히 2010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금메달 3개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박정환과 조한승이 병역 특례 대상이 됐지만 불행히도 그게 마지막이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국내 프로 기사들이 세계대회서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 해도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기원에서는 프로 기사들이 군 복무 중에도 선수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키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한 결과 마침내 해군으로부터 바둑 특기병 선발, 운용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냈다. 해군은 내년부터 연간 5명 정도 프로 기사를 바둑 특기병으로 선발, 군 장병 및 지역 주민에 대한 바둑 보급 활동에 횔용할 방침이다.

해군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해군작전사령부, 인천해역방위사령부, 충무공리더십센터, 해군사관학교 등지에서 병영 바둑 교실을 활발히 운영하는 등 군 바둑 보급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현재 해군에는 홍민표, 전영규, 김현섭, 고근태, 진동규 등 프로기사 5명이 현역으로 근무하면서 해군작전사령부, 충무공리더십센터 등에서 지역 주민과 미군 장병들에게 바둑을 가르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는 해군이 그동안 운용해 온 마술병, 성악병 등과 마찬가지로 이번 바둑병 선발도 다양한 특기를 가진 병사들을 활용해 온 방안의 연장이다. 병영 생활을 보다 활기차게 만들고 도서 장병 위문, 대민 봉사 활동 등을 보다 효과적으로 펼칠 수 있는 것은 물론, 해당 장병들은 군 복무 기간 중 지속적인 자기 발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제도로 평가 받고 있다. 또한 바둑병들이 국내외 대맙?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젊은 층의 바둑에 대한 관심도 높일 수 있어 바둑붐 조성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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