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대역 주변. 클럽 문화로 유명한 이 곳에는 클럽 못지 않게 마니아층에게 유명세를 떨치는 가게들이 있다.'윈도 베이커리'로 불리는 소규모 동네 빵집이다. 매장에 붙어 있는 작업장에서 제빵사가 바로 반죽해 구워낸 따끈따끈한 빵을 판매하는데, 빵집마다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갖가지 종류의 빵들을 선보여 인기가 높다. 전국 대부분의 골목에 진출해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들의 천편일률적인 맛에 식상한 소비자들,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 스타일의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 채식주의자들, 외국인과 유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부럽지않은 이들 윈도우 베이커리들은 홍대 인근에서도 마포구 상수동 일대의 골목에 가장 많이 몰려 있다.
대다수의 우리나라 베이커리의 빵맛은 좀 달고 특색이 없는 편이다. 일본 제빵의 영향을 받아 단팥빵, 카스테라 등 달달한 간식용 빵을 주로 팔아왔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식사 대용 건강빵을 접한 유학생이나 건강에 관심이 높아진 이들이 늘면서 최근 서구스타일의 빵에 대한 수요가 생겼다. 2010년 전후로 젊은 층과 외국인들이 몰려 있는 홍대 인근에 '브레드05', '퍼블리크', '악토버'등 개인 빵집들이 문을 연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 특색 있는 개인 빵집들의 공통점은 맛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데다, 모두 빵에 들어가는 재료 선정부터 발효하고 굽는 방식까지 정성을 다한 건강 빵에 초점을 둔다는 점. 발효부분에서 빵을 부풀게 하는 이스트 대신 천연효모로 발효시킨 천연발효종 빵이 대세다.
천연발효종을 사용해 만든 빵은 유산균 발효를 통해 소화를 도와 빵을 먹고 난 뒤에도 속이 불편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 굳는 이스트빵과 달리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보관하고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장인들의 빵집들답게 천연발효종 기술 역시 빵집마다 달라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브레드05'는 막걸리로 발효시킨 주종과 쌀, 호밀가루, 레몬, 건포도 등 5종류의 천연효모를 사용한다. 상호 역시 빵을 굽는데 5일이 걸린다는 의미에서 따왔다.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빵은 치아바타에 고소한 버터와 직접 졸여낸 팥앙금을 넣은 '앙버터'. 하루에 최대 250개까지 나간다. 윤수호 생산부장은 "은은한 레몬향이 번져 버터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레몬종을 이용한 크로와상, 주종을 이용해 누룽지처럼 고소한 맛이 나는 바게뜨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상수동 주택가에 위치해 아는 사람만 찾아간다는 퍼블리크는 정통 프랑스식 레시피로 승부한다. 맷돌을 현대화한 전동맷돌을 이용해 옛 전통방식대로 만든 프랑스 전통 밀가루를 수입해 사용한다. 기계제분 밀가루보다 영양소 파괴가 적고 고소한 맛을 낸다는 게 박흥식 대표의 설명. 30시간 이상 장시간 발효한 천연발효빵이 많은데 밀가루 자체를 천연발효해 만든 게 특징.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아몬드 크로와상. 퍼블리크 2대 셰프인 김현지씨는 건강하고 든든한 식사빵 종류를 추천한다. 김씨는 "80% 통밀로 만든 '빵 드 퍼블리크'와 100% 호밀빵인 '세이글'은 밀가루와 물, 소금만 사용해 채식주의자들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합정역 근처에 자리잡은 '악토버'의 빵들은 약간 시큼한 맛이 난다. 홍정욱 셰프는 이를 '산미'라고 표현한다. 천연발효종빵에서만 나는 맛이라고 한다. 머루포도종에서 추출한 액을 발효한 것에 밀가루와 소금, 물을 넣어 밀가루 반죽자체를 천연발효종으로 만들어 다른 천연발효빵과 차별화한 결과다. 독일식 빵을 고수하고 우리밀과 국산 유기농 재료를 사용해 유학파와 외국인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홍 셰프의 추천 빵은 깜빠뉴와 르방. 약간 시큼한 맛과 담백한 맛이 어우러져 식사빵으로 손색이 없다.
일본 전통 나가사키 카스테라로 차별화한 '키세키'도 있다. 2대째 제과점을 운영하는 쿠보타 후유키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일본 큐슈의 나가사키 카스테라 장인에게 직접 배운 전통 방식으로 카스테라를 만든다. 계란함유량이 55%인데 방사유정란과 유기농 재료만 사용하고, 버터나 오일을 사용하지 않는다. 카스테라를 굽는데 14시간 정도 걸려 하루에 40개만 한정 생산 판매한다. 쿠보타 대표는 "많은 이들에게 전통 카스테라를 맛보게 하고 싶었다"며 "일본인들은 물론 임산부, 가족단위 고객들도 많다"고 말했다.
글·사진=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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