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에 꼭 맞는 노래 가사 한 구절.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 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가지….' 1971년 29세의 아까운 나이로 요절한 가수 배호의 '마지막 잎새'다. 온 몸의 진액을 걷어 올려 흐느끼듯 노래하는 창법으로, 5년간의 가수 활동 이래 일세를 풍미한 그의 노래들이 지금도 우리 귓가에 여일하게 남아 있다.
'돌아가는 삼각지'나 '안개 낀 장충단공원' 같은 배호의 히트곡은 전국을 휩쓸었는데, 문제는 그 가사·곡조·음색이 모두 처량하고 슬프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가 그의 운명을 재촉한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한다. 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차중락은 28세의 젊은 나이에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해뜰날'의 송대관은 60대 중반이 지난 지금도 펄펄 날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자기도 모르는 자기 암시가 때로는 강력한 작용으로 몸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다가 목이 말라 폭포의 물을 맛있게 마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서는 순간 포이즌(Poison)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는데, 독을 마셨다는 생각에 갑자기 창자가 녹아내리는 듯한 아픔이 밀려와서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진찰한 의사가 껄껄 웃으며 "그 팻말은 프랑스어로 낚시금지(Poisson X)입니다"라고 하자, 그렇게 심하던 배의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얘기다.
아주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상식이나 그에 대한 믿음은 마음을 넘어 몸까지 지배한다. 이러한 현상을 위약(僞藥) 효과, 곧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 부른다. 약효가 전혀 없는 거짓 약을 진짜 약으로 속여 환자에게 복용하도록 했을 때 병세가 호전되는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 의료 윤리가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으나, 치유의 성과에 중점을 둔다면 그 위언(僞言)이 필요악일 수도 있겠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조각가 피그말리온(Pygmalion)은 자신이 제작한 아름다운 여인상에 갈라테이아란 이름을 붙이고 그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는 미의 여신 아프로티테에게 조각상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달라고 빌었다. 여신은 그 진정성에 응답하여 조각상을 여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그것을 밀고 나가면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피그말리온 효과라 부르는 유래다.
이에 관해 하버드대 로버트 로젠탈 교수가 1968년에 행한 현장 실험이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무작위로 20% 정도의 학생을 뽑아 우수한 학생들이라고 담임교사에게 주지시켰다. 8개월 후 측정을 해 보니 이들의 점수가 다른 학생들 보다 상승한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명단에 있는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기대와 격려가 그 원인이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어려운 탄식 가운데 있는 백성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앞날의 희망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비록 플라시보 효과이든 피그말리온 효과이든, 백성을 속이는 거짓말이 아니라면 미래의 방향을 희망을 가꾸는 데 두는 것이 옳다.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 희망이 남아 있다고 위무하기 보다는, 그것의 실천적 청사진을 눈앞에 들어 보여야 설득력이 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혁명을 승리로 이끈 고난의 대장정 기간에, 중국 인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그들을 일으켜 세움으로써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우리 역사에서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세종은, 26세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극심한 가뭄과 기아에 마주쳤다. 거리에 굶어 죽은 사람의 시체가 즐비하자 왕은 자신의 식량인 내탕미로 죽을 끓여 백성을 공궤했다. 자신은 궁궐 안에 초가를 짓고 거기서 잠자며 정무를 보살폈다. 이와 같은 감동이 희망을 불러왔고, 그의 치세는 태평한 시대를 열어갔다.
희망은 예정된 물질 외에 과외의 몫을 요구하지 않는다. 희망은 공짜다. 희망을 품게 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2012년 대선 막바지에서 어느 후보가 포퓰리즘 복지 공약이 아닌 나라와 백성의 희망을 명료하게 보여주는지, 필자는 그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김종회 경희대 국문과 교수ㆍ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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