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환자단체·법학자 등 참여특별안 구성 연말부터 본격 활동내년 하반기 법제화 여부 결정의료·종교계 '생명윤리' 논쟁 예고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지난달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존엄사)에 관한 안건에 대한 제도화를 적극 추진하라"고 결정하면서 오랫동안 논란을 거듭해왔던 존엄사 허용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재연될 전망이다. 현재 의료계, 시민단체, 환자단체, 법학자 7~10명이 참가하는 국가생명윤리위 산하 특별전문위원회가 구성되고 있으며, 전문위원회는 연말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간다. 이 전문위원회가 논의 결과를 내년 5월 보고하면, 국가생명윤리위는 이를 토대로 법제화 여부에 대한 의견을 정부에 제시하고, 정부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입법 절차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존엄사 논쟁은 인공호흡기에 생명을 의존하던 환자의 가족이 요청해 호흡기를 제거한 의사가 환자 사망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은 '보라매사건'(2004년)으로 처음 우리 사회에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어 2009년 5월 식물인간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던 김모(2010년 사망ㆍ당시 78세) 할머니의 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낸 연명치료 중단소송에서 대법원이 이를 수용하면서 "아무런 기준 없이 의사나 환자, 본인, 가족들의 판단에만 맡겨두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국가는 입법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 제도화를 위한 첫 문턱에 이르렀다. 네덜란드, 벨기에('안락사법'), 미국 오리건주('존엄사법') 등은 법률로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는 입법이 아닌 판례에 기초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존엄사를 용인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여러 쟁점을 포함하고 있어 법제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모 할머니 판결 이후에도 18명의 전문가로 이뤄진 사회적 협의체가 2010년까지 7차례나 논의를 거듭했지만 결국 핵심쟁점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당시 협의체는 ▦존엄사 대상환자 ▦중단가능한 연명치료의 범위 ▦환자의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을 통한 의사확인 등에 대해서는 합의했지만, "의사표명이 불가능한 환자의 의사를 어떻게 추정하고, 누가 그것을 확인할 것인가"라는 쟁점에 대해서는 첨예한 이견을 드러냈다.
논란의 핵심은 이른바 환자의 평소 신념ㆍ가치관 등에 근거한 추정에 의한 의사표시, 가족 등 대리인에 의한 의사표시에 대해 법적 효력을 부여할지 여부다. 대부분의 존엄사 환자들이 의식불명의 상태로 존엄사에 이르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를 어떻게 추정하느냐의 문제다.
의료계와 종교계의 입장 차는 분명하다. 의료계는 공식적으로 언급을 꺼리지만 추정이나 대리인에 의한 의사표시를 인정하지 않으면 제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국가생명윤리위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계 출신의 한 위원은 "명분에 집착해 의료현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에둘러 긍정 입장을 표시했다. 반면 종교계는 의료비 부담이 과도한 현실에서 이를 허용할 경우, 경제적 이유로 존엄사가 남용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진교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서울대 명예교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위배되고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추정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환자의 의식을 확인할 수 없을 경우 병원윤리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교회협회(NCCK) 생명윤리위 관계자는 "주로 가족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허용하면 자칫 너무 쉽게 생명을 포기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부정적 의사를 표시했다.
2010년 사회적 협의체에서도 '추정에 의한 의사표시 인정' 안건에 대해 의료계 출신 위원 3명은 모두 찬성했으나 종교계 위원은 4명중 1명만 (조건부)찬성했다. '대리인에 의한 의사표시의 인정' 안건에 대해서는 의료계 출신 위원 3명이 모두 찬성하고, 종교계 위원 4명중 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김명식 조선대 법학과 교수는 "추정과 대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제도의 효율성ㆍ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지만 그대로 인정하면 환자의 의사가 왜곡될 수 있다"며 "추정대리를 인정하되 처음에는 엄격한 조건을 두고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순차적으로 완화하는 것이 해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관계자는 "존엄사 법제화 논의는 사회적 협의체에서 합의된 세 가지 의제만 이뤄질 것으로 보이고 추정과 대리 인정 부분은 법제화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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