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대책은 대선 일자리 공약의 단골 메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며 당선된 이래 비정규직은 모든 정치인에게 가장 시급한 노동문제로 각인돼 있다. 3명중 1명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이고 우리 사회 양극화의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성향의 정치인이라도 비정규직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비정규직의 숫자를 줄이고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여야의 관련 공약을 비교해보면 차별시정제도를 강화하는 방안에서는 이견이 없지만 비정규직을 줄이는 방법과 규모에서는 차이가 크다. 새누리당은 비정규직의 규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까지, 민주통합당은 지금의 절반까지 줄이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여야 모두 공공부문의 상시업무에는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한다. 이는 2년 기간제한의 기준을 사람이 아니라 직무중심으로 바꾼다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되면 상시업무인데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사람을 계속 바꾸는 관행을 막을 수 있다. 이런 방침을 민간 대기업까지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하니 파격이 아닐 수 없다. 그 수단으로 국회는 이미 대기업의 고용공시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매년 기업의 고용현황을 공개토록 함으로서 대기업들이 고용창출과 비정규직 축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더하여 민주당은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사유를 제한해서라도 비정규직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지만 입법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야를 떠나 이런 종류의 대책만으로 지금의 비정규직 문제를 크게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처방은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고용관행을 바꿀 수는 있어도 비정규직의 95%가 포진해 있는 중소기업에 별다른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600만 명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중에서 대기업 소속은 30만 명에 불과하다. 어느 정도 체계적인 인사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100인 이상 사업장을 모두 합해도 68만 명에 불과하다. 90% 가까운 비정규직은 100인 미만 사업장에 있다. 그 중에서도 3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에 70%의 비정규직들이 밀집해 있다. 이들이야말로 저임금과 고용불안, 사회보험과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정부의 보호를 기다리는 비정규직의 핵심집단이다. 그리고 이 노동시장이야말로 경기변동과 무관하게 상시적인 인력난으로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여 하루하루 지탱하는 현장이다. 건설이나 음식숙박업, 그리고 섬유와 봉제와 같은 중소제조업이 직면한 만성적인 인력난과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근로빈곤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따라서 비정규직문제를 노동정책만으로 풀려는 것은 실속 없는 우격다짐으로 끝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들의 고용개선을 위하여 정부가 굳이 추가적인 비정규직보호 대책을 만들 필요도 없다. 이미 가입이 의무화되어있는 사회보험을 철저히 징수하고 노동행정을 강화하여 이들이 노동법적 권리와 보호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에 상시적인 저임금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최저임금을 점차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추가될 수 있다. 정부는 이 모든 것들을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감당할 영세사업장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비정규직문제는 이들 사업장의 낮은 생산성과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대책은 영세사업장의 합리화를 위한 구조조정 정책과 병행돼야 한다. 출혈경쟁으로 산업생태계를 좀먹는 좀비 기업의 퇴출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대적인 산업정책과 저생산성과 저임금에 묶여있는 노동자들을 더 좋은 일자리로 끌어들이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병행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비정규직 대책이라도 십중팔구 실패로 끝날 것이다.
그렇다고 영세사업장 모두를 일시에 손댄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산업적으로나 고용 측면에서 우선순위를 따져 건설과 2~3개의 제조업종을 선별하여 강력한 산업합리화 정책과 고용개선 정책을 집중해 보면 어떨까.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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