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다. 잎사귀를 모두 떨어뜨리고 거뭇한 수피를 가릴 것 없는 나무는, 서릿바람을 맨몸뚱이로 받아내며 침묵의 숲을 이루고 있다. 울지 않는 까마귀가 푸덕이는 소리만 거칫한 늦가을의 덕유산. 울긋불긋 흥성했던 계절을 보내고 순백의 계절을 기다리는 그 무진장의 침묵 앞에, 사람이 없다. 소란과 소란 사이, 명징하게 고여 있는 적요의 시간. 오래 머무르지 않을 산과 들의 침묵을 찾아 무주로 갔다. 세상의 말들에 내 몸 속의 피톨이 지친 탓인지, 사람의 목소리가 멸절된 공간으로 내 발이 끌려가고 있었다.
“내 고독이 내 앞에 있다/ 커다란 집인 양 덕유산은 나를 감싸고 물소리들이 발에 걸려 비틀거린다 굴참나무 청시닥나무 복장나무 왕솔나무 들이 물안개 속에서 그림자 던지고 행락객이 사라진 이제 사방은 고요뿐 그뿐… 그것들도 물 속 깊이 흘러 보이지 않는다/ 나는 저녁 구천동 길을 간다 새들이 숲속으로 사라지고 무량의 시간들도 사라진다 돌아보면 길섶에서 모습을 감추던 기억도 이 시간에는 옷자락을 끌며 어디론지 사라진다 나는 발 밑에서 고요가 부서지는 소리 듣는다(후략)”(‘구천동 詩論’)
집 나서는 길에 시인 최하림(1939~2010)의 책을 챙겼다. 수사(修辭)가 없는 그의 문장은 늦가을 산빛을 닮았다. 벗은 나뭇가지에 내려앉는 십일월의 햇살 같은 언어들. 직장생활을 길게 한 최하림은 중년의 바쁜 시간을 전라도에서 보냈다. 짙어지는 황혼의 빛을 그가 시로 걸러낸 배경이 이곳 무주 땅이다. 겨울 스키 시즌을 목전에 둔 무주는 왠지 어수선해 보였는데, 그 부박한 ‘겨울’을 벗어난 산과 들에서 아마도 시인의 황혼은 물들어 갔을 터이다. 적상산(1,029m)으로 갔다. 인적 끊긴 산으로 향하는 길에 담결한 그의 시가 육성으로 와 닿는 듯했다.
“하늘 가득 내리는 햇빛을 어루만지며/ 우리가 사랑하였던 시간들이 이상한 낙차를/ 보이면서 갈색으로 물들어간다 금강물도 점점/ 엷어지고 점점 투명해져간다 여름새들이/ 가고 겨울새들이 온다 이제는 돌 틈으로/ 잦아들어가는 물이여 가을물이여/ 강이 마르고 마르고 나면 들녘에는/ 서릿발이 돋아 오르고 버들가지들이 얼어/ 은빛으로 빛난다 우리는 턱을 쓰다듬으며/ 비좁아져가는 세상 문을 밀고 들어간다/ 겨울과 우리 사이에는 적절한지 모르는/ 거리가 언제나 그만쯤 있고 그 거리에서는/ 그림자도 없이 시간들이 소리를 내며/ 물과 같은 하늘로 저렇듯/ 눈부시게 흘러간다”(‘버들가지들이 얼어 은빛으로’)
적상산은 두터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여인네의 치마와 같다고 해서 적상(赤裳)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천일폭포, 송대폭포, 장도바위, 장군바위, 안렴대 등의 명소가, 불과 한 달 전에 단풍객들로 몸살을 앓았던 곳이다. 거짓말처럼 아무도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잎은 벌써 누렇게 퇴색돼, 이제 열편(裂片)의 모양만으로 그것이 단풍나무의 잎사귀였음을 알 수 있었다. 가을의 기억이 소리 없이, 두텁게 신발 아래 밟혔다. 산정호수를 지나 한참을 더 오르면 적상산성이 나온다. 해발 1,000m에 부는 바람은 이미 겨울이다. 옷깃을 여며도 소용이 없는 건, 발 아래 펼쳐진 떠나가는 가을의 풍경 때문일 것이다.
“십일월이 지나는 겨울의 굽이에서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으며 가지를 늘어뜨리고 골짜기는 입을 다문다/ 토사층 아래로 흘러가는 물도 소리가 없다 강 건너/ 편으로 한 사내가 제 일정을 살피며 가듯이 겨울은/ 둥지를 지나 징검다리를 서둘러 건너간다 시간들이/ …… / 너는 저 시간들을 돌아보지 말아라 시간들은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다 시간들은 거기 그렇게 마른 풀과 같이/ 나둥그러져 있을 뿐… 시간의 배후에서는 밤이 일어나고/ 미로 같은 안개가 강을 덮는다 우리는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후략)”(‘십일월이 지나는 산굽이에서’)
적상산에서 내려와 라제통문부터 구천동 계곡을 거슬러 올랐다. 33경(景)의 명승지가 줄줄이 꿰어진 물줄기는 무채색의 암벽 사이를, 얼어붙기 직전의 냉기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름과 가을 행락철을 치른 마을들은 휑했고 낯선 차가 드는 것을 경계의 눈으로 바라봤다. 마을엔 열매를 따지 않은 감나무가 많았다. 감은 가지에 매달린 채 진홍색으로 물렁해지고 있었다. “좋죠, 참 좋죠.” 그 물컹한 동그라미를 뷰파인더에 담고 있는데 귀농한 듯 보이는 노부부가 등 뒤에서 말을 붙였다. 앞과 뒤 없이, 맥락과 논리 없이 툭 던지는 말투였다. 가방에 꽂힌 책의 저자도 평소 저렇게 말했다는 것을, 그의 부음을 전하는 기사에서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것도 데자뷰일까. 덕유산으로 향했다.
“(전략)나는 마을 앞 당산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한동안 덕유산을 본다 산은 어느 때고/ 물에 젖은 채 입 다물고 있다/ 침엽수들이 해마다 솟아오르면서/ 골짜기는 깊어가고 내를 따라 가을 물은/ 졸졸졸 흐르다가, 그것도 그치고 나면/ 일대는 무통의 적막뿐, 그뿐,/ 아내는 낮은 소리로 산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작아지고, 그림자들이 우리를/ 어둠 속으로 몰고 간다고, 나는/ 말없이 귀를 기울인다 말은/ 은빛으로 반짝이면서 저녁 하늘로/ 퍼져간다 산 아래, 나무 아래, 돌 밑에 숨는다(후략)”(‘갈마동에 가자고 아내가 말한다’)
해발 1,600m가 넘는 덕유산 산정엔 이미 겨울이 도착해 있었다. 이르게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얼어붙었다. 향적봉 오르는 능선의 나뭇가지엔 하얀 상고대가 피어 있었다. 산정엔 벌써 사람이 붐볐다. 가을과 겨울 사이엔, 겨우 관광용 곤돌라를 타고 오르는 20분의 시간만이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보온병의 차를 마시고 소리 지르고 사진 찍느라 분주하고 왁자했다. 가을과 겨울 사이, 침묵의 깊은 계절은 바쁘게 떠나가고 있었다.
“깊은/ 가을로 걸어갔다/……/ 시간을 통과해온 얼굴들은 투명하고/ 나무 아래 별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저마다의 슬픔으로/ 사물이 빛을 발하고 이별이 드넓어지고/ 細石에 눈이 내렸다/ 살아 있으므로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시간들이 가서 마을과 언덕에 눈이 쌓이고/ 생각들이 무거워지고/ 나무들이 가만히 서 있을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언제나 저렇듯 무겁게/ 내린다고, 어느 날 말할 때가 올 것이다/ 눈이 떨면서 내릴 것이다/ 등불이 눈을 비출 것이다/ 등불이 사랑을 비출 것이다/ 내가 울고 있을 것이다”(‘가을, 그리고 겨울’)
여행수첩
●한국 백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적상산은 비교적 높은 곳까지 차도가 닦여 있어 편안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무주읍에서 당산마을 거쳐 천일폭포, 산정호수, 안국사, 안렴대, 향로봉으로 오르는 북창코스(안국사까지 자동차 이용 가능), 무주IC에서 서창마을까지 자동차를 타고 간 뒤 장도바위, 향료봉, 기봉, 안렴대, 적상산 사고지를 잇는 서창코스 등이 있다. 적상산 탐방안내소 (063)322-4174 ●겨울 산행지로 인기 높은 덕유산(1,614m)은 관광 곤돌라를 이용해 해발 1,520m의 설천봉까지 오를 수 있다. 이용요금 왕복 1만 2,000원.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약 600m(40분 소요). 삼공탐방지원센터에서 백련사, 향적봉, 남덕유산을 잇는 종주 코스는(26.7㎞)는 1박 2일이 소요된다. 국립공원덕유산사무소 (063)322-3174 무풍면 삼거리에 덕유산자연휴양림이 있다. (063)322-1097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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