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목도되고 있는 일련의 검사 관련 사건들이 있어서는 안 될 '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자신이 수사하던 여성 피의자를 검사실로 불러내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 서른 살의 '성(性) 검사'를 조사한 대검은 "이런 인간 때문에 조직이 오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라고 여겼을 법 하다. 화간(和姦) 이라고 핏대를 세운 성 검사한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성관계를 여성 피의자가 검사한테 제공한 일종의 향응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뇌물을 바친 사람도 사법처리해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건 제외했다. 치열한 법리적 고민 이후 내린 결정이 아니라, 다분히 검찰 조직을 의식한 무리한 짜내기식 판단, 뭐 그런 뉘앙스를 잔뜩 풍겼다. 일반적인 뇌물 수수자와 공여자의 관계로 보기엔 무리한 측면이 있다는 일각의 의견도 무시됐다. 결과는 검찰의 판정패.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은 검사에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한 것도 그렇고, 영장이 기각된 것 역시 새 기록들이다.
'돈 검사'건도 마찬가지. 유사 사건이 있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기록이다. 검사 생활을 한지 20년이 훨씬 넘은 간부급 검사가 10억원 정도 되는 돈을 기업과 전대미문의 사기꾼 측으로부터 받은 건 아무리 검찰사(史)를 뒤져봐도 없다.
여기서 검찰의 치욕적이고 망신스러운 '기록 릴레이'가 그치면 좋겠으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기록 경신 대열에 합류할 다음 인물은 한상대 검찰총장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한 총장은 지금 상처투성이 신세라고 봐야 옳다. 그가 검찰 총수가 된 뒤 검찰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은 언급조차 하기 민망할 정도다. 국민이 공분할 때 환부를 깔끔하게 도려냈어야 하는데, 실기했다. 그러니 영화나 소설에서 나올 법한 신참 검사의 엽기적인 성추문 사건 따위가 터지는 것 아닌가.
검찰은 최고 사정기관으로서의 체면을 스스로 구겼다. 특별검사팀이 꾸려져 재수사에 들어간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같은 사안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검찰을 부끄럽게 만든 코미디는 꽤 된다.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가 난망한 이유다.
대선 후보들에게 검찰은 이미 손 볼 대상의 중심에 있다. 방향타를 잃은 검찰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나 같다. 실상은 정치권력이나 재벌권력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면서 겉으로 아무리 '공정 수사'를 외쳐봐야 부질없다. 대권 도전자들은 강도높은 개혁만이 검찰을 바로 세워 국민에게 봉사하는 조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한 총장이 손을 놓고 있진 않았던 것 같다. 대검 중수부 폐지, 상설특검제 도입, 기소대배심제 적용 같은 검찰 개혁 방안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대변신을 선언할 생각이었는데, 덜렁 돈 검사와 성 검사에 발목이 잡혔을 수도 있겠다.
어떤 상황에서든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곪을 대로 곪은 검찰을 대수술하는 첫 번째 과정이 한 총장의 거취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결자해지의 마지막 기회가 그에게 주어져 있다는 판단이다.
그의 선택에 따라 검찰의 '새 기록'도 나올 것이다. 도의적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다면 MB 정부 들어 2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총장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버틴 상태로 내년 8월까지인 임기를 채운다면 그것 역시 새 기록이 된다. 정권 교체 이후 임기를 끝내고 나가는 첫 검찰 총수가 되는 것이다. 어떤 길을 갈 지는 한 총장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추락한 조직을 먼저 고려하는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 하나만 지적해두자. 수백억원대 횡령 혐의로 기소된 재벌 오너와 취임 전 테니스를 함께 친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당사자의 구형량을 줄이라고 지시한 건 아무래도 도를 넘은 것 같다.
검찰 총수가 지워야 할 '기록'에 가담하는 일이 과연 벌어질까. 검찰의 환골탈태는 '기록'과는 관계가 없어야 하는 게 순리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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