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원을 받으려면 4,600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바보가 아닌 이상 2,820원을 손해 보느니 단념하는 게 정답일 게다. 그런데 포기하는 순간, 그 돈은 고스란히 금융회사의 것이 된다. 특히 그 돈이 선친의 유산이라면 유족들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우리나라 상속인 금융거래는 허점투성이다. 금융회사 창구에선 까다로운 보안 절차를 앞세워 유족들을 힘들게 하더니, 금융감독원이 제공하는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 서비스'는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유족이 금감원 조회 서비스를 이용하면 은행 보험 증권 등 망자의 금융거래 존재 유무 대부분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는 편리하지만 통장 잔고나 보험계약의 상세 내용이 빠져있다. 확인하려면 돈을 들여 서류들을 떼고, 시간을 들여 해당 금융회사에 직접 가야 한다. 문제는 공들여 예금이나 보험금 잔액을 확인해보니 서류 발급 비용보다 적을 때다.
예컨대 따로 사는 삼형제 중 맏이가 일을 처리한다면 기본증명서(1,000원), 가족관계증명서(1,000원), 동생들 인감증명서(600×2)와 우체국등기(1,500원×2) 등 서류비용만 6,200원이 든다. 여기에 서류를 발급 받느라 사용한 시간과 노력은 제외했다. 그런데 확인 결과 선친 통장에 2,000원이 남아있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서류가 없으면 예금 액수를 확인할 수 없고, 잔고에 상관없이 수많은 서류를 요구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유사한 불만과 항의가 이미 인터넷에 수없이 올라와 있다. "기껏 서류 챙겨갔더니 잔액 달랑 600원, 그러고도 서류가 미비하다고 돌려보냈다" "몇 천원 찾으려고 은행 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한 게 열 받는다" 등이다.
금융회사마다 다른 일 처리 방식도 유족들을 지치게 한다. A보험사는 선친의 보험계약 번호를 전화상으로 알려줬더니 계약 시점, 납입 횟수, 잔액, 환급액수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반면 B보험사는 6가지의 서류를 직접 들고 와야 확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것도 보험계약 내용만 알 수 있고, 환급을 받으려면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적어도 소액에 대해선 절차 간소화, 금융사간 절차 통일이 시급해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속 문제로 유족간에 분쟁이 생길 경우 예금 액수를 알려준 근거를 대라고 하면 실명제 위반 소지가 있고, 미리 알려줘 찾아가지 않으면 휴면계좌가 늘어나는 부작용도 있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금감원 조회 서비스엔 채무금액만은 표시된다. 3개월 안에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유산 내에서 망자의 빚을 갚는 것)을 해야 하는 유족들을 배려한 조치다. 망자의 예금도 '5,000원 이하 또는 이상'이라고 표기하는 등 일정 기준을 정해 공개하면 될 일이다. 강형구 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상속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의 소액이라면 구비 서류를 더 줄이고, 금융회사 직원들에게 면책특권을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30대 이상 사망자 수는 25만434명이다. 이들이 남긴 통장에 1,000원씩만 들어있어도 2억5,043만원이다. 복잡한 반환절차를 끝까지 밟아 유산을 찾는 사람의 비중이 얼마나 높을지 회의적이다. 기자 역시 선친이 남긴 2,000원(예금), 1,780원(보험환급)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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