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마라토너의 길을 걷기 위해서 중학교 입학과 함께 제주도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김태진(17)이 이렇게 말했다.
육상 명문 배문고 2학년인 김태진은 26일 열린 경부역전마라톤 이틀째 레이스 밀양~대구 68.1㎞ 대구간중 제3소구간(신도리~청도 8㎞)에서 내로라 하는 실업팀 선배들을 물리치고 1위로 골인했다.
강한 맞바람을 안고 달려 구간 신기록을 새로 쓰지는 못했지만 2위를 41초 따돌리는 호기록이었다. 5년간 김태진을 지도해온 배문고 조남홍 감독은 “수년 내 (김)태진이가 침체된 한국 마라톤에 일대 충격파를 가할 것이다. 스피드와 지구력이 해가 바뀔 때 마다 급성장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태진은 실제 ‘운명’처럼 육상과 만났다. 제주 효돈초등학교 6학년때 한 육상대회에 나가 800m에서 2위를 한 것을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5,000m 금메달리스트 김종윤씨가 지켜 본 것이다. 김종윤씨는 한 눈에 김태진에 숨겨진 마라토너의 끼를 발견하고 배문중으로 유학을 권했다. 김종윤씨는 결국 감귤농장을 하는 김태진의 부모님을 설득한 뒤, 조감독에게 체계적인 조련을 부탁했다. 김태진은 이 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1,500m와 3,000m 랭킹 1위에 올라 존재감을 과시했다.
키 164㎝에 몸무게 52㎏으로 아직은 덜 여문 상태지만 김태진은 꿈만큼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스타디움에 꽂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근성과 지구력은 누구보다 앞설 자신이 있지만 스피드가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김태진은 실제 지난달 대구에서 열린 전국체전 고교부 5,000m 2위, 10㎞ 4위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 11일 막을 내린 통일역전 대회 10㎞ 구간을 29분대에 주파해 대회 최우수 선수에 뽑히기도 했다. 김태진은 “마라톤 사관학교 건국대에 진학해 본격적인 마라토너의 길을 걷겠다”며 다부진 각오를 다졌다.
대구=최형철기자 hc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