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29일 오후 2시.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707기가 미얀마 근해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발음과 함께 사라졌다. 기내에는 중동에서 귀국하던 해외근로자 93명과 외국인 승객 2명, 그리고 승무원 20명 등 모두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 여객기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기착한 후 다시 방콕을 경유하기 위해 비행 중이었으며 마지막 교신을 끝으로 레이더에서 사라지며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사건발생 이틀 만인 12월1일 사고비행기에 한국 입국이 금지된 일본 국적의 요주의 인물 두 명이 탑승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수사는 급진전됐다. 문제의 두 일본인은 '하치야 신이치(김승일)'와 '하치야 마유미(김현희)'로 이들은 비행기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후 중간기착지인 아부다비에서 내려 탈출 경로를 따라 이동 중이었다. 바레인을 거쳐 로마를 통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도주하려던 김승일은 바레인 공항에서 위조여권이 적발돼 체포되기 직전 독약이 든 캡슐을 깨물고 현장에서 자살했다. 김현희 또한 음독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현지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
한국 정부는 바레인에 수사팀을 급파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김현희의 신병을 확보한 후 그 해 12월15일 김포공항을 통해 압송했다. 16년 만에 부활된 직선제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은 김현희 송환에 집중됐다. 두툼한 솜바지 차림으로 수사관들에 의해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던 그의 입에는 자살 방지를 위한 재갈이 물려있었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국가안전기획부로 연행됐다. 다음날, 몰아친 북풍 와중에 양김의 분열에 힘입은 민정당 노태우후보가 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88년 1월15일 안기부의 수사발표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김현희는 초췌한 모습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고 88올림픽을 방해하고 남한 내 계급투쟁을 촉발할 목적으로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했다"고 주장했다. 자신과 김승일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소속 특수공작원 부녀로 가장해 해외적응훈련을 가졌으며 87년 11월29일 여행자 휴대용품으로 위장한 라디오 시한폭탄과 액체 폭발물을 선반 위에 놓아두고 내림으로써 비행기가 공중 폭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무것도 모르는 115명의 생명이 고스란히 공중에서 희생된 것이다.
사건발생 3년 만인 90년 3월 대법원은 사형을 선고했지만 김현희는 의아스럽게도 판결 보름만에 특사로 풀려났다. 북한의 날조 주장을 반박할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현희는 이후 97년 안기부직원과 결혼해 가정을 꾸려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대한항공 858기 폭발사건은 아직도 많은 의혹에 휩싸여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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