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뇌병변 등 1급 중증장애 딛고 한국은행 공채 합격한 박기범씨
“한 문제를 6분 안에 풀어야 하는데, 문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저에겐 2~3분밖에 남지 않습니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08학번 박기범(23)씨는 1급 중증 장애인이다. 지난달 20일 한국은행 공채 필기시험에서 최고도의 안경을 쓰고도 돋보기로 문제를 읽었다. 사물이 형체만 희미하게 보이는 지독한 약시 탓에 돋보기 렌즈 안에 들어오는 8배 크기의 글자 하나, 하나를 조심스레 이어가야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들은 후딱 읽는데 1분도 안 걸릴 테지만 박씨에겐 3~4분이 걸렸다. 당연히 답을 쓰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 그가 우수한 성적으로 필기를 통과한 데 이어, 개인 프레젠테이션, 심층토론을 거쳐 최근 한은 신입사원 최종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33.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었다. 평균 합격연령(25.5세)보다 훨씬 어리다. 시각장애에, 중학교 때 뇌출혈까지 겹쳐 왼쪽 손은 거의 쓰지 못하고 걸음도 절름거리지만 비장애인들과 경쟁해 당당히 합격의 영광을 안은 것이다.
그는 26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를 악물고 공부해 꿈을 이뤘다”고 했다.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육상선수가 초침을 재듯 시간을 정해놓고 문제풀이 하는 습관을 들였어요.” 참고서를 읽는 것도 힘에 부쳤을 터. “10권 정도를 쌓아두고 지친다 싶으면 바로 다른 책을 봤어요.” 그렇게 1년 반을 준비했다. IMF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하고 염소를 기르는 아버지를 보고 금융산업, 특히 중앙은행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한은에 지원하게 된 동기다.
그는 장애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이란 사실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고교 시절엔 전교 160등이던 성적을 5등까지 끌어올렸다. 부모의 반대를 딛고 전남 화순에서 홀로 상경해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늘 주변에서 도와준 분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채용을 담당한 한은 관계자는 “장애인임을 당당히 밝히고 직접 문의까지 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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