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룰 협상 개시 하루 만에 참지 못하고 협상 중단을 선언했던 것이 패착이었나. 단일화 룰 협상의 디테일에 매달리기보다 대승적으로 양보했어야 하나. 역대 대선마다 초기에 유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던 제3후보들이 11월에 들어서면서 지지율의 급락과 함께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린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는가. 시민정치의 이름으로 기성 정당정치의 구태를 넘어보고자 했던 새 정치의 실험은 기존 양당 구조의 공고한 벽에 부딪혀 여기서 멈추는가.
지난 주말 떠오른 이런 저런 생각의 편린들이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에 대한 시각은 대략 다음의 세 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는 듯하다.
우선 안 전 후보의 아름다운 결단과 양보라는 시각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과의 단일화 룰을 둘러싼 치킨게임 상황에서 정권교체를 위하여 장렬하게 희생하는 한편 그 동안 쌓아 온 자신의 새 정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하여 명분 있는 퇴장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퇴 회견을 통하여 모든 것을 걸고 단일화를 이루어내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를 한 바 있다. 이는 주로 안 전 후보의 지지층의 입장으로서, 지난 주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이제 이들 중 상당수는 실망감과 허탈감에 휩싸여 부유하고 있는 양상이다.
다음으로 정치공학적 시각이다. 안 전 후보의 사퇴는 지지율 하락세라는 현실적 이유에 기인하며 유ㆍ불리를 따지는 지루한 룰 협상 과정에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정면승부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내다보고 사퇴 카드를 내밀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입지가 더 훼손되어 회복불능 상황에 이르기 전 '손절매'를 통하여 정치적 명분과 실리를 함께 챙겼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이제 안 전 후보의 퇴장 이후 정치공학적 시각의 주된 관심은 야권의 단일화 효과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부유하는 중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지 등의 문제로 옮겨진 듯하다.
마지막으로 정치쇄신의 시각이다. 즉 안 전 후보 개인의 공과에 대한 평가 혹은 정치공학적 분석을 넘어 안 전 후보가 대변해온 새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가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안 전 후보의 정치실험은 한계와 문제점을 노정하기도 하였다. 가령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둘러싼 논란과 단일화 과정의 지루한 밀고 당기기로 인하여 한편으로 아마추어적인 반정치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기존 정치의 정치공학적 구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소위 안철수 현상으로 인하여 대선 사상 처음으로 정치쇄신 문제가 주요 의제로 부상하였고 여야 정치권의 가시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각각 새로운정치위원회와 정치쇄신특별위원회를 설치해 경쟁적으로 쇄신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으며 양당 사이에 정치쇄신협의체 구성에 원칙적으로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정치 쇄신안의 내용 또한 비례대표제 확대와 국민참여경선 도입 등 기존 정치권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며 시민참여를 제고하는 개혁적 정책들을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안 전 후보 사퇴 이후에도 지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엊그제 안 전 후보의 사퇴 발표 이후 나온 양당의 반응을 보면 실로 안철수 받들기 경쟁에 몰입한 듯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 전 후보의 구정치와 반정치를 비판하던 입장과 사뭇 다르다. 문 후보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공이 단순한 수사 차원을 넘어 안 전 후보의 정치개혁 과제를 받아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할지 지켜보고 그 결과에 따라 심판해야 할 이유다. 안철수 현상의 모멘텀을 살려나가야 한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