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벌써부터 이익단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향후 정책 시행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조금씩 양보해 함께 잘 살자'라는 명분에도 불구, 대다수 경제민주화 실현방안이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재조정하는 것이어서 필사적인 반발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정책 시행에 앞서 투명한 논의과정과 논리를 갖춘 설득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23일 산업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최근 추진 중인 경제민주화 성격의 입법ㆍ행정 조치들이 곳곳에서 당사자들의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신용카드 수수료율 조정.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에 따라 카드사들은 영세상인들의 수수료율을 인하한 데 이어, 다음달까지 대형 가맹점들의 수수료율을 상향 조정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이 최근 각 업계에 수수료율 인상안을 통보하자 집단 반발이 줄을 잇고 있다. 통신업계는 "법률 효력정지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나섰고, 손해보험사들은 여차하면 카드결제 자체를 거부할 태세다.
유통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대형마트들의 영업시간을 제한해 골목상권과의 공생을 뒷받침하자는 경제민주화 법안이지만, 유통업계의 결사 반대로 해당 상임위원회(지식경제위)를 통과하고도 법사위에서 논의가 중단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까지 "선진국에도 없는 규제"라며 지원사격에 나선 상황이다.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시키는 대중교통법 개정안은 민주통합당의 3대 민생입법 중 하나지만 버스와 택시업계 모두의 반대로 사면초가 처지가 됐다. 버스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까 두려운 버스업계는 사상 초유의 운행중단으로 실력행사에 나섰고 결국 법안의 본회의 상정을 저지시켰다. 그러자 이번에는 택시업계가 전국 25만대 택시를 동원해 국회 앞 상경투쟁을 벌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신용카드 모집인들도 최근 금융당국이 마구잡이 카드발급 억제를 위해 일명 '카파라치'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예고하자 헌법소원도 불사하겠다며 생존권 지키기에 나선 상태다.
이는 모두 기득권 침해를 우려하는 기존 이익집단의 본능적 반응이다. 내년부터 경제민주화 공약이 본격화하면 입법과 시행과정에서 해당 기득권층의 반발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우려된다. 소유지배구조 개혁 공약의 대상인 재벌들은 벌써부터 투자 포기, 국가경제 악영향 등의 논리로 반대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반값등록금을 앞둔 대학들, 복지확대로 세금이 늘어나는 고소득층도 군말 없이 등록금수입 감소나 세금인상을 인정할 리 만무하다.
MB정부가 지난 5년간 줄곧 밀어 부쳤던 서비스업 선진화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결국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수의약품 편의점 판매에는 약사들이, 영리의료법인 도입에는 의사들이 조직적으로 반대에 나서 국회 논의조차 진행하지 못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고착화한 기득권 구조를 재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경제민주화에도 인내심과 구체적인 전략 마련이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수백만 자영업자, 수천만 납세자의 이익을 조정하려면 섣불리 명분만 내세우기보다 개혁 필요성을 뒷받침할 근거와 설득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경제민주화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면서 "카드사의 적정 수익이 얼마인지, 택시 과잉이 어느 정도인지 같은 객관적 사실을 먼저 제시하고 투명한 논의과정을 통해 공통의 이익을 설득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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