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을 치르고 개발에 한창 열을 올리던 1980년대 후반 서울. 방과 방 사이를 나눈 벽으로 겨우 구색을 갖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로공단 인근 벌집촌에 사는 중학생 승협이의 삶은 고달프다. 노동 운동을 하는 공장 노동자 부모님, 수술비가 없어 심장병 치료를 못하는 여동생, 그리고 벽 너머 이웃집에서 생생하게 전달하는 온갖 냄새와 소음까지. 유일한 희망은 강 건너 부자 동네에 들어선 동양 최대 규모의 놀이공원 원더랜드에 놀러가는 것.
"청룡 열차를 타고 은하철도 999처럼 빛의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은하계 저편으로 날아가 버릴" 수 있는 그곳, "단 하루만이라도 지긋지긋한 골목길과 단칸방에서 탈출하게 해줄" 그곳은 승협이에게 원더랜드다. 올해 비룡소 '블루픽션상' 수상작인 은 그맘때 나이에 '지상 최고의 낙원'으로 여길 원더랜드와 80년대 후반 개발 서울의 모습을 대조시키며 중학생 승협이의 성장통을 그린다. 승협이는 우여곡절 끝에 '원더랜드'의 입장권을 얻지만 경품을 타려고 서로를 견제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셔터를 눌러대며 좋아하는 어른들의 괴물 같은 모습에 실망한다. 개발에 대한 허황된 환상과 맵디매운 경쟁에 승협이는 "원더랜드에도 별 거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씁쓸해 하지만 한 뼘 성장하게 된다.
"지금 청소년들과 80년대를 연결해 그 시대상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서울토박이 작가는 "환상의 실체를 직접 경험해보면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원더랜드'를 둘러싼 시위, 가난, 노동운동, 혼혈 등 배경은 무겁고 어둡지만 청소년들의 시선과 말투로 경쾌하게 풀어낸 수작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김정은 인턴기자 (숙명여대 정보방송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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