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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검사가 뭐길래

입력
2012.11.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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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 케이블 방송에서 본 일본 드라마가 생각난다. 일본의 인기배우 기무라 타쿠야가 열혈 초임 검사로 나오는 '히어로'다. 드라마 속의 이 검사는 다른 검사들이라면 대충 처리하고 말았을 사건을 부여잡고 동분서주하는 일이 많다. 장면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사건 때문에 투덜거리는 사무관에게 "검사는 피해자를 위해 일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한 그의 말이 아직도 머리 속에 꽂혀 있다. 가해자 단죄라는 현상에 붙잡혀 이면에 있는 피해자의 해원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탓에 그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노자는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이라고 했다. 하늘의 그물이 너무 커서 성긴 듯하지만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당장은 억울함이 있지만 하늘이 반드시 옳고 그름을 가려주리라는 믿음이 담겨 있다. 검사라는 직업도 천망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검사는 수사권과 함께 기소독점과 기소편의의 권한을 가지고 죄를 묻는다. 무리한 기소를 이유로 검사의 권한을 문제 삼는 일이 많지만 죄를 보고서도 딴 목적으로 기소를 하지 않는 게 더 문제다. 기소가 무리했다면 법정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수 있지만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으면 죄를 묻기가 어렵다. 검사의 독직 가운데 죄질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 독직 사건에서 드러난 여러 비리 의혹 가운데 눈 여겨보게 되는 것은 내사를 중단하고 돈을 받았다는 대목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시절인 2008년 김 검사가 유진그룹 임직원의 비리 혐의를 포착해 압수수색을 검토하다 회사 측으로부터 6억 원의 돈을 받고 수사를 중단한 혐의다. 유진그룹 측은 빌려준 돈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판사가 특임검사의 영장 청구를 받아들인 만큼 범죄 혐의가 인정되는 걸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내사가 진행되고 중단되는 과정에 김 검사의 상하에 있는 검사들은 뭘 하고 있었냐는 것이다. 검사 동일체라는 조직원리 아래 수사와 공소 제기 및 유지 등 검찰 사무에 관하여 상명하복 관계에 있다고 규정하는 이 조직에서 이를 개인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막강한 권한에 비해 외부 견제가 사실상 없는 게 검찰조직이다. 권한에 어울리는 검사 개개인의 높은 도덕성을 담보할 수 없다면 내부의 상호 감시와 견제라도 제대로 기능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권한에 비해 견제가 부실한 기형적 구조의 내적 모순이 커지고 있지만 검찰은 시대의 변화와 이에 걸맞은 변화의 필요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규정을 내세워 사건 가로채기를 한 검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찰과의 수사협의회 과정에서도 여전히 고압적이다. 그 속내를 짐작하자면 경찰이 검사를 수사하고 구속하는 이 상황은 60년 지휘구조의 붕괴사태이고, 이러한 계급질서 파괴만은 어떻게든 막아야겠다는 심사가 아닌지 모르겠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라는 유명한 저서를 통해 '기존의 지배적 틀이 행위 주체에 의해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 경합의 규칙 자체가 목표물이 된다'고 했다. 수사지휘권을 둘러싼 검경 갈등과 정치권의 검찰 권한 쪼개기 내지 견제제도 도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지금 상황을 분석해 놓은 것 같다.

기자가 연수를 위해 머물렀던 미국 시애틀에는 2008년 세워진 스티브콕스 기념공원이 있다. 2006년 파티장 총격 사건에 출동했다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경찰관을 기린 공원이다. 그는 형사범들이 사법체계를 우롱하는 현실에 회의를 느껴 일선 범죄 현장에서 지역사회를 더 안전하게 지키겠다며 사표를 던진 지방검사 출신이다. 검사 우월론을 대놓고 말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없을 전직(轉職)이다.

정진황 사회부 차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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