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무학대사는 태조 이성계의 뜻을 받들어 새로운 도읍지를 정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소를 타고 가던 늙은 농부를 만났다. "이 놈의 소가 미련하기가 꼭 무학과 같구나, 좋은 자리를 다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닌다"는 농부의 중얼거림에 무학대사는 가르침을 구했고, 농부는 "십리를 더 가라"고 한 뒤 사라졌다. 무학대사는 농부의 가르침 대로 북악산 아래 경복궁 자리에 도읍을 정했다고 전해진다. 무학대사와 농부가 만난 곳은 '십리를 가라'는 뜻의 '왕십리(往十里)'가 됐다.
조선시대 왕십리는 하층민들이 부락을 형성해 한양도성 안의 서울 사람들에게 채소를 길러 공급하고, 소를 잡아 고기를 판매하던 것으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대에 전차 노선이 지나가며 기계ㆍ방직 등의 공장지대로 바뀌었고, 해방 이후에는 금속, 유리 등을 가공해 제품을 만드는 금형공장, 전복과 소라를 사용해 문양을 새기는 자개공장, 미싱 1~2대로 옷을 만들던 봉제공장이 골목골목을 채웠다. 인근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공급된 고기로 장사하는 곱창집들도 약 20년전부터 거리를 형성해 맛집골목으로 각광받았다.
그리고 2002년 뉴타운 예정지로 선정된 왕십리는 주민들의 이주와 철거작업을 거쳐 재개발이 진행중이다.
조선시대 채소밭에서 일제강점기 공장지대, 그리고 곱창거리를 거쳐 뉴타운으로 탈바꿈하게 된 서울 왕십리 주민들의 애환을 담은 기록이 한 자리에 전시된다.
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문화관은 23일부터 내년 2월24일까지 근현대 왕십리에 기록물 특별전 '가도가도 왕십리'를 연다고 22일 밝혔다. 전시 제목 '가도 가도 왕십리'는 '비가 온다/오누나/오는 비는/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로 시작하는 김소월의 시 '왕십리'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60여년간 왕십리를 지켜오다 2009년 재개발로 자리를 옮긴 해장국집 '대중옥'은 실제 모습에 가깝게 재현된다. 당시 대중옥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문짝과 메뉴판, 전화기, 뚝배기 등을 기증받아 옛 모습을 살렸다.
금형ㆍ자개 제작 기계와 생산품, 생활용품 130여점, 왕십리 토박이들의 인터뷰와 금형ㆍ자개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이 전시되고, 1891년 구한말 풍경 등 왕십리의 지난 이야기를 담은 흑백사진, 1950~1970년대 왕십리를 그린 시와 소설, 가수 김흥국의 '59년 왕십리' LP 등 왕십리 사람들을 표현한 영화와 노래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자개를 이용해 자개쟁반을 만들어보는 연계교육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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