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6일 일본 총선에서 차기 집권당으로 떠오를 자민당의 선거공약이 가관이다. 오랫동안 숨죽였던 강경 보수파의 해묵은 바람을 쓸어 담은 듯하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반성을 기초로 만들어진 현행 '평화헌법'을 전면 개정하여 무력에 의한 분쟁 해결과 군대 보유 해금, 자위대의 군대화 및 집단적 자위권 행사 보장, '상징천황'의 국가원수 격상 등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하나하나가 군국주의 시대의 끔찍한 역사를 일깨우기에 족하다. 나아가 현재 시마네현 단위의 지방행사인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의 날'을 정부행사로 격상하고, 역사 반성을 담은 역사교과서의 기술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랫동안 민간 차원에서 추진돼 온 역사 정당화 작업에 정부가 본격적으로 앞장서겠다는 약속이다.
애초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군대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비롯한 역대 일본 정부의 역사 반성ㆍ사죄 담화를 폐기 내지 수정하겠다고 밝혔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던 움직임이긴 하다. 다만 아베 총재를 비롯한 자민당 지도부의 역사 인식과 정치 감각이 설마 이 정도로 정상궤도를 벗어났을 줄은 몰랐다. 자민당의 총선공약이 지향하는 일본의 미래상은 1945년 2차 대전 패전 이전, 아니 대외팽창을 통해 국가 정체성 확보와 국민통합을 이루려던 19세기 말로의 회귀처럼 비친다.
물론 일본의 헌법개정은 중ㆍ참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공약(空約)에 가깝다. 내달 총선을 통해 의석분포가 바뀌는 중의원에서 자민당이 과반수라도 넘어설 가능성은 희박하고, 민주당의 참의원 지배는 계속된다. 또한 민주당 정권이 끝내 실패한 상황에서 마땅한 대안이 없어 자민당에 표를 던지더라도 일본 유권자들이 이런 시대착오적 망상에 끌린 결과라고 보기도 어렵다.
차기 일본 정권이 사소한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웃나라의 역사감정을 건드릴 경우 일본 국민에 얼마나 심대한 손실이 따를지 경고한다. 동시에 한중 양국이 더 이상 100년 전의 약하고 무지한 나라가 아님을 일깨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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