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불모지에서 석유제품 수출 1위 달성의 경이적 신화를 쓴 정유업계지만 표정은 별로 밝지 않다. 갈수록 이익률이 위축되어가고 있기 때문인데, 이유는 바로 내수시장의 적은 마진에 있다.
GS칼텍스의 경우 3분기 영업이익 3,238억원. 작년보다 20% 이상 줄었다. 특히 매출의 83%를 차지하는 정유 부문만 떼어놓고 보면 영업이익 715억원에, 이익률은 0.7%에 불과했다. 정유에선 사실상 '노 마진'장사를 했고, 나머지는 석유화학제품에서 돈을 벌었다는 얘기다. 돌려 말하면 내수에선 남은 게 없고, 수출로 그나마 이익을 냈다는 소리다.
사실 국내 정유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지 오래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정유 4사의 일일 공급능력은 290만배럴인데 반해, 수요는 220만b/d에 그치고 있다. 남는 생산물량을 수출로 돌려야 적자라도 면한다는 얘기다. A사 관계자는 "4분기 계절적 수요를 고려해도 올해 정유업계의 영업이익률은 2%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국내 판매여건은 갈수록 악화되는 추세. 정유업계는 지금도 2년 전 강타했던 기름값 폭리논란의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 '고유가=정유사 폭리'로 인식되면서 정부는 정유사 장부까지 뒤졌고, 그래도 안되자 리터당 100원 인하를 억지로 이끌어냈다. 업계 관계자는 "내수, 즉 국내 주유소판매에선 폭리는커녕 적정이윤도 내기 힘든 구조다. 내수의 적은 마진을 석유화학제품과 수출에서 만회하고 있는데 정부는 물가안정을 이유로 무조건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알뜰주유소, 석유제품 무관세수입 및 전자상거래 등을 통해 기름값 인하를 강도 높게 유도하고 있어, 정유업계의 내수마진은 앞으로 더욱 축소될 전망이다.
하지만 투자수요는 점점 더 커지는 상황. 고도화 설비 1기를 짓는 데에만 보통 1조~3조원의 돈이 들어간다. 이익이 축소되면 결국 신규투자 및 설비 업그레이드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한 정유사 고위관계자는 "정유사들이 마치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돈을 버는 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수출 1위 등극을 계기로 정유산업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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