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제품이 수출 1위로 자리매김하게 된 1등 공신은 고도화 설비다. 질 나쁜 기름을 비싸고 질 좋은 기름으로 바꾸는 '마법의 설비'다.
해외에서 들여온 원유를 정제장치에 넣고 끓이면 온도에 따라 휘발유 경유 등유 중유 등이 나오는데, 이 중 40%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 중질유(벙커C유)이다. 황 함유량이 많은 중질유는 품질이 낮고 환경오염이 심해 원유보다도 가격이 싸다.
환경규제 강화로 이런 저가 중질유의 수출길은 점점 막히는 상황. 그러자 국내 정유업계는 막대한 돈을 들여 고도화 설비를 짓기 시작했다. 고유황 벙커C유에 수소나 촉매제를 첨가한 뒤 다시 분해해, 휘발유 나프타 윤활기유 등 부가가치가 높은 경질유를 뽑아내는 장치다. 새로운 제품으로 탈바꿈시킨다는 뜻에서 '땅 위의 유전'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정유 4사는 2000년대 후반부터 고도화 설비 확충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지난 7년간 정유사들의 시설투자비 20조원 가운데 10조원 이상이 고도화 설비 증설에 투입됐다는 통계도 있다. 덕분에 석유제품 수출에서, 값비싼 경질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육박하고 있다.
고도화 설비에 가장 먼저 눈을 뜬 업체는 에쓰오일이다. 에쓰오일은 이미 1996년 대규모 중질유 탈황ㆍ분해 복합시설(BCC)의 상업 가동을 시작, 안정적인 저유황 연료 공급기반을 확보했다. 현재 고도화 설비 5곳에서 생산하는 석유제품은 하루 14만9,000배럴에 이른다.
GS칼텍스는 월등한 고도화 능력이 자랑거리다. 1조3,000억원을 들인 제4중질유분해 시설이 2013년 완공되면 GS칼텍스의 일일 고도화 처리능력은 국내 최고 수준인 26만8,000배럴로 늘게 된다.
현대오일뱅크는 규모는 작지만 '고도화율', 다시 말해 정제 원유량 중 고도화 설비가 담당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업계 평균이 22.4%(분해시설 기준)인데, 현대오일뱅크의 고도화율은 31.3%에 달한다.
국내 최대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은 업계 맏형답게 설비 대형화에 힘을 쏟고 있다. SK에너지의 제3기 고도화시설은 축구장 55개를 합친 규모와 맞먹는 39만3,300㎡의 부지 위에 지어졌다.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의 김정식 석유생산본부장은 "정제 기술력뿐 아니라 제품저장, 운반이 가능한 원스톱 시스템을 갖춘 덕분에 해외 바이어로부터 선적의 속도와 안정성까지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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