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BRSO)의 첫 내한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말러 같은 화려한 후기낭만 '쇼케이스' 음악을 기대했던 팬들은 좀 실망했을 것이다.
베토벤 교향곡이라니! 웬만한 본고장 악단도 실연에선 감동을 주기 쉽지 않은 레퍼토리다. 개인기나 잔기교가 통하지도 않고 음반처럼 윽박지르듯 음향으로 압도할 수도 없다. 지휘자의 해석, 단원들의 높은 이해도, 오래 갈고 닦은 앙상블 등 연주자의 밑천을 모두 드러내야만 한다.
20, 21일 이틀 공연 중 2번과 3번 교향곡 '영웅'을 연주한 첫 날. 지난 2년간 베토벤에 천착해 온 얀손스와 BRSO는 철저히 정공법으로 한국 팬을 상대했다. 그것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유럽 무대 공연이나, 악단 자체 레이블에서 발매한 음반과 또 달랐다.
감정 이입을 억제한 해석이 특히 그랬다. 2번은 간결한 조형으로 기름기를 쭉 뺐다. 과장과 과시 없이 초기작 고유의 박진감을 살렸다.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듯하지만, 지휘자의 직설적인 성향과도 통했다. 소규모 편성의 실연인 점을 감안하면 볼륨감은 무난한 편이었다. 다만 1악장 코다(codaㆍ종결부)의 트럼펫 팡파르나 3악장 스케르초의 싱커페이션(syncopationㆍ당김음) 리듬 등은 좀 더 터뜨려주고 강하게 밀어붙여도 좋을 법했다. 악단의 소릿결과 합주는 '과연'이란 감탄사를 이끌어냈다. 1악장 서주부터 BRSO 특유의 청아한 목관이 귀에 꽂혔다. 현은 초반 몸이 덜 풀린 듯 다소 메말랐는데 3, 4악장을 거치면서 촉촉한 윤기를 되찾았다.
단원 10여명이 가세한 3번 '영웅'은 역시 이날의 하이라이트가 됐다. 잰걸음의 템포가 전편을 지배하면서 쾌감이 넘쳤다. 시대 악기 연주 뺨칠 만큼 빠른 2악장은 특별했다. 지휘자라면 누구나 클라이맥스에서 듣는 이의 감정을 쥐어짜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얀손스는 그런 감상(感傷)을 배제했다. 애잔하고 투명하게 선율을 흘려보내다가 트리오와 대위 악구에서 서서히 감정을 고양시켰다. 굳이 '장송 행진곡'이란 표제에 얽매이지 않아도 어색함이 없다. 이전까지 아껴 뒀던 에너지는 4악장에 남김없이 발산했다. 형형색색의 변주, 치열한 현의 보잉, 마지막 호른의 개방적인 찬가까지 일필휘지로 내달렸다. 최종 E 플랫 장조의 화음이 끝나자마자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은 용수철처럼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세 차례 커튼콜 끝에 연주한 앙코르는 놀랍게도 하이든 현악 4중주 '세레나데'였다. 바이올린의 농밀한 선율과 나머지 현의 피치카토(pizzicatoㆍ현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주법) 반주가 귀를 간질였다. 내심 베토벤의 서곡을 기대한 청중에겐 의외의 반전이었을 것이다. 하긴 강건한 '영웅' 뒤에 그 어떤 소란스런 연주가 필요하랴. BRSO는 그렇게 지워지지 않을 첫인상을 남겼다
이재준ㆍ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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