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H시인의 집들이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다. 그녀는 한국문학사에 등재될 것이 분명한 중요한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세 옥탑방에 살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빈곤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의식하지도 못한다. 그 자리엔 그녀의 친구인 가난한 화가도 와 있었다. 화가는 자신보다 더 가난한 어떤 화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날, 가난한 화가가 자신의 좁은 작업실 안에서 대형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목재와 천을 사다가 캔버스를 짜고 작업을 시작했단다. 며칠을 작업에 몰두한 끝에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비좁은 방의 문이 턱없이 작았기 때문에 완성된 그림을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 캔버스를 만들 때는 나무와 천 등 부속물의 형태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그림까지 그려진 커다란 캔버스였던 것이다.
화가는 아무리 궁리를 해도 그림을 훼손하지 않고 캔버스를 밖으로 가지고 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결국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그 그림을 부수어 버렸다고 한다. 참 씁쓸한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예술가들의 생활고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몇 년 전, 한국 문인의 평균 소득이 1년 300만원이라는 통계가 나온 적이 있다. 먹고 사는 걱정 때문에 예술 창작의 의욕이 쇠하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각박하고 춥고 어려운 때일수록 시집이라도 한 권 더 사서 읽고, 전시장에라도 한 번 더 가는 것이 어떨까?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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