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40)씨의 취미는 여행이다. 1년에 적어도 두세 번 해외 여행을 즐긴다. 은퇴 후에도 취미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최근 월 58만원씩 20년간 납입하는 연금저축보험을 들었다. 만 60세부터 20년간 월 100만원(공시이율 4.5% 기준)을 받을 수 있다는 보험설계사 말에 솔깃해서다. 하지만 설계사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제가치가 얼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향후 20년간 연평균 3%의 물가상승률을 가정하면 김씨가 20년 후 받을 연금의 실제가치는 월 55만원에 불과하다. 여행자금은커녕 생활비로 쓰기에도 부족한 액수다.
연금저축, 종신보험 등 미래 대비 보험상품이 쏟아지고 있지만 보험금 속에 가려진 '인플레 착시'를 제대로 설명해 주는 보험사는 거의 없다. 고객들은 물가상승률이 반영되지 않는 탓에 20~30년 후 수령 시점에 가면 연금의 실제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른 채 상품에 가입하고 있는 셈이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만 40세 남자가 30년 후 받는 연금(보험금) 월 100만원(월58만원 20년간 납입, 공시이율 4.5% 기준)의 실제가치는 물가상승률 1% 반영 때 74만원, 2% 55만원, 3% 41만원으로 나타났다. 보험사 관계자는 "고객과 계약할 때 현 공시이율을 기준으로 20~30년 후 받게 될 보험금 액수를 알려준다"며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게 아니어서 고객이 체감하는 실제 돈의 가치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보험사들은 고객에게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보험금 수령액을 안내하는데 인색하다. "고객별로 보험료, 납입기간 등이 다른데 여기에 물가상승률까지 반영한 실제가치를 알려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보험사들의 항변이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연금을 주는 국민연금은 매년 가입자 모두에게 가입내역안내서를 발송해 실제가치로 환산한 예상 연금 수령액을 알려준다.
금융당국이 내놓은 처방도 고객 입장에선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연금저축 상품을 비교한 '제1호 금융소비자 리포트'를 펴냈지만, 지난 10년간의 은행ㆍ보험ㆍ자산운용사 등 업권별 수익률만 제시됐을 뿐 이 기간 물가상승률과 이를 반영한 각 금융사의 실제 수익률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보험금의 실제가치를 정확히 알아야 노후 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며 "금융회사들이 20~30년 후 받게 될 보험금의 실제가치를 공시해서 인플레 착시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