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대선을 감안해 여야 합의로 오는 22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키로 했으나 결국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예정대로라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지난 12일부터 이미 계수조정소위 활동에 들어갔어야 한다. 하지만 어제까지 소위 구성조차 하지 못했고, 24일부터는 국회가 휴회에 들어가기 때문에 예산 처리는 사실상 12월 대선 이후에나 가능하게 됐다.
19대 국회 첫 예산심의가 표류하게 된 배경은 '새 대통령 예산론'과 계수조정소위 위원 분배를 둘러싼 여야 대립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이 제기한 새 대통령 예산은 내년도 예산에서 전체의 1% 가량인 3조~4조원을 신임 대통령의 공약 실현을 위한 일종의 예비비로 떼어놓자는 것이다. 민주당 후보 당선 시 예산운용의 여지를 넓혀놓겠다는 포석이다. 하지만 의석 과반을 점한 새누리당은 "국회의 예산심의ㆍ확정권을 부정하는 제왕적 사고"라며 일축하고 있다.
14명으로 합의된 계수조정소위 위원 배분 갈등도 비슷한 양상이다. 새누리당은 선진당과의 합당 등으로 여당 예결위원이 늘어난 만큼 소위의 여야 위원수도 8대 6으로 하자는 것이고, 민주당은 1석을 진보당에 배정해 7대 7로 해야 옳다며 맞서고 있다. 이런 대립은 책임 방기라기 보다 예산심의에서 의결권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열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그렇더라도 예산의 졸속, 지연 심의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게 문제다.
사실 예산 처리의 단순한 지연 보다 더 심각한 건 예산과 연계된 법안의 졸속처리 가능성이다.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돼야 할 세법개정안만 해도 대폭 수정이 예고되어 있으나 심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또 예산심의 파행과 대선 정국을 틈 타 수 조원 대의 지역민원 법안이 각 상임위에서 속속 처리돼 그걸 막자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도 빚어지고 있다. 예산안 처리의 주도권을 둘러싼 싸움의 한쪽에서 졸속과 부실, 고질적 민원예산의 독버섯이 자라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을 방조하자는 게 아니라면, 국회는 즉각 정상적인 예산 처리 방안을 강구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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