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인기 TV프로그램인 'KBS 스페셜'은 18일 밤 8시 배호의 꺼지지 않는 인기를 조명한 '가객, 배호의 귀환'을 방영했다. 당초 예정 대로라면 이날 방송에는 지난달 한국을 방문하고 간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의 돈보스코 브라스밴드 이야기를 담은 '브라스밴드, 한국에 오다!'가 나갔어야 했다.
KBS가 급하게 프로그램을 바꾼 것은 이 브라스밴드를 만들고 지도하며 남수단에서 선교 활동을 벌이다 암으로 선종한 이태석 신부가 소속됐던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가 법원에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성 요한 보스코(1815~1888) 신부의 뜻을 받들어 130개국에서 가난하고 버림 받은 청소년을 보살피고 있는 이 가톨릭 수도회는 13일 서울 남부지법에 낸 가처분 신청서에서 KBS는 돈보스코 브라스밴드의 한국 활동을 적절한 절차 없이 촬영했고 그들의 거듭된 방송금지 요청에도 불구하고 방영을 강행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방한 전 양해각서로 이미 방영 약속을 했다는 KBS의 설명에 대해 한국살레시오회는 톤즈 학교가 보관하고 있는 양해각서에는 방송 관련 내용이 전혀 없다며 문서 변조 의혹까지 제기했다.
수도회와 KBS는 지난 16일 남부지법에서 심리를 받고 12월 12일 재심 때까지 이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아프리카에서 선행을 베풀다 세상을 떠난 이 신부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감독 구수환 KBS PD)는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방영이 보류된 '브라스밴드, 한국에 오다!'는 구 PD가 만든 일련의 이태석 다큐의 4부쯤에 해당한다. 이 신부가 떠난 뒤 역시 신부인 그의 형이 공동대표를 맡아 출범한 사단법인 이태석사랑나눔이 한국수출입은행, KBS, 남수단정부와 벌이는 학교, 병원 짓기도 아프리카를 돕는 소중한 사업이다.
그런데 왜 한국살레시오회는 KBS, 이태석사랑나눔의 이런 활동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걸까. 살레시오회 장동현 신부는 "이 신부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재단을 원치 않았다"며 "이태석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이런 활동은 이 신부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살레시오회는 지난 5월 성명서를 통해 "(이 신부의)삶과 영성이 상업적 흥미에 의해 훼손되는가 하면 그의 영성적 뿌리에 대한 고찰 없이 단편적인 평가나 과장 또는 세속적인 영웅 만들기로 존재적 가치가 왜곡된다"며 그는 사회사업가가 아니라 "교회에 충실했던 사제요 모범적인 수도자"라고 강조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살레시오회 신부들이 남아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톤즈 마을이 이 신부가 떠난 뒤 폐허가 됐다는 식으로 KBS 등이 잘못 전한 것도 감정의 골을 부추겼다.
살레시오회와 KBS의 갈등을 보면서, 선의라면 아무렇게나 베풀어도 좋은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