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진료과 안에서도 이른바 주류와 비주류 영역이 있다. 흉부 외과에서는 보통 심장이나 폐 수술이 주류로 분류된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이나 목숨을 좌우하는 큰 수술이 대부분인 데다 환자 수도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비주류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사도 몰린다.
한편 비주류 영역에 속하는 병을 얻은 환자들은 어느 병원, 어느 의사를 찾아가야 할 지부터 막막할 때가 적지 않다. 새가슴 환자들이 바로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심장이나 폐를 주로 보는 의료진이 대부분인 흉부외과에선 최근까지도 치료 사례가 많지 않다. 이성수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그래서 새가슴 환자를 위한 특별한 치료법을 고안했다.
치료 필요 없다던 선천성 기형
사실 이 교수 역시 1990년대 중반 전공의로 일할 때까지는 선배 의사들이 새가슴 수술을 집도하는 걸 한번도 보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흉부 외과에선 새가슴은 환자도 드물고 위급한 증상도 나타나지 않으니 굳이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이에 비해 오목가슴 수술은 전공의 때도 몇 번 경험했고, 1990년대 말 미국에서 새로운 수술법도 나와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보기 시작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흉벽 기형의 두 가지 유형인 새가슴과 오목가슴은 갈비뼈와 복장뼈(흉골)를 잇는 갈비연골(늑연골)이 지나치게 성장해 앞으로 툭 튀어나오거나 뒤로 쑥 들어간 상태를 말한다. 하필 그 부위가 왜 그렇게 자라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인 요인이 30% 정도인 걸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흉벽 기형이지만 오목가슴이 새가슴에 비해 더 관심을 받아왔다. 환자 수도 3배 정도 많은 데다 갈비연골에 중요한 장기가 눌려 손상될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치료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새가슴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적지 않다. 오목가슴은 옷으로 가릴 수나 있지만, 새가슴은 그대로 드러나니 말이다.
이 교수는 "전문의가 된 뒤 외래를 보면서 오목가슴 환자들에겐 새로 나온 수술법도 있어 희망을 줄 수 있었지만, 새가슴 환자들에겐 해줄 말조차 없어 안타까웠다"고 회상했다. 국내에만 머물면 해결이 안될 거라고 판단한 이 교수는 미국과 아르헨티나로 날아갔다.
수술 않고도 정상 가슴으로
과거 오목가슴 수술은 가슴을 열어 과성장한 갈비연골을 다 잘라냈다. 그리곤 다시 제대로 자라도록 기다렸다. 환자의 고통도 컸고, 가슴엔 상처가 20cm 넘게 남았다. 1990년대 말 미국에서 새롭게 시작된 수술은 가슴 양쪽에 각각 1.5cm의 구멍 두 개를 내고 과성장한 갈비연골 밑으로 두께 약 3mm, 길이 약 25cm인 티타늄 재질의 막대를 넣어 갈비연골을 원 위치로 들어올린 상태로 고정해주는 방식이다. 2년 정도 지나 갈비연골이 제 자리를 찾으면 다시 수술로 막대를 제거하는 것이다. 통증도 상처도 크게 줄어든 이 수술이 나온 뒤 오목가슴 치료는 훨씬 활발해졌다.
2005년 아르헨티나에서는 이 수술 방식을 새가슴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티타늄 막대로 튀어나온 부위를 눌러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 수술법을 익혀와 지난해부터 국내에서 새가슴 환자를 수술하기 시작했다. 그는 "오목가슴과 달리 새가슴 수술 땐 막대를 갈비뼈에 단단히 고정해야 해서 우리나라 환자 체형에 맞게 직접 개량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이 교수는 새가슴은 오목가슴과 달리 수술하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가슴을 조여주는 보조기(피존 브레이스)를 환자가 착용한 채 지내게 하는 방법이 그것. 오목가슴은 영ㆍ유아 때도 눈에 띄지만, 새가슴이 주로 처음 발견되는 건 청소년 시기다. 어릴 땐 드러나지 않다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몸집이 확 자라면서 알아채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교수는 "보통 18세 이전까지는 갈비 연골이 아직 유연하기 때문에 가슴을 6개월 정도 꾸준히 눌러주면 그 상태로 구조가 리모델링 된다"며 "보통 처음엔 보조기 치료를 시도하다 환자가 아프거나 불편해 하며 포기할 경우 수술을 권한다"고 말했다.
외국 제품의 경우 400만 ~ 500만원을 호가하지만 정작 문제는 국내에 보조기가 아예 없었다는 점. 이 교수는 그래서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 직접 개발했다. 튀어나온 부위를 압박하는 둥근 누름판이 달린 띠 모양으로 환자 체형에 맞게 크기를 조절하도록 돼 있는 데다 50만원 정도로 외국산보다 훨씬 싸다. 지난 6월 일본흉벽기형연구회는 이 교수에게 이 새가슴 보조기 치료법을 강의해달라며 초청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새가슴은 사실 그냥 둬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자주 숨이 차거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증상이 생기기도 하지만 극히 드물다. 그러나 성장기 청소년에게 또래와 다른 신체 이상은 큰 스트레스일 뿐 아니라 성격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새가슴인 아이들 중에는 수영장처럼 몸이 드러나는 곳에 가기 꺼려하거나 유달리 민감해지고 움츠러드는 경우가 많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새가슴 치료는 인생을 바꿔주는 만큼의 큰 의미다. 부모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
선배 의사들의 경험이나 노하우가 많이 전해지지 않는 비주류 영역을 개척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 교수는 "보조기 같은 비교적 간단한 치료도 의사가 경험이 없으면 적극 시도하기 어렵다"며 "의료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전엔 각광받지 못했던 분야라도 그 중요성이 인정받게 될 것"이라며 기대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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