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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세속의 그늘, 과연 경허스님의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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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세속의 그늘, 과연 경허스님의 책임인가

입력
2012.11.1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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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교수"경허스님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친일 지식인들의 의도적 공격"●김방룡 교수"진과 속의 구분 없었으므로 행리를 문제삼을 것 없어"

"승려가 꽤 많지만 경허대사처럼 부처님 대접을 받아본 사람도 없고 경허대사처럼 악마라는 혹평과 마종(魔種)이라는 비방을 들은 이도 없을 것이다."

경기 화운사 강사를 지낸 포교사 대온(大穩ㆍ김태흡) 스님이 1938~39년 잡지 에 연재한 '경허대사 일대 평전'의 한 대목이야말로 경허 스님(1849~1912)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경허 스님은 음주식육과 여색을 꺼려하지 않았으면서도 걸출한 선승 대접을 받은 한국불교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기행을 둘러싸고 당대뿐 아니라 열반 100주년인 지금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진 폐간으로 이어진 사태가 대표적이다.

불교서적 전문출판사인 민족사 윤창화 대표는 계간 가을호에 실린 '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에서 일제강점기 불교사학자 등의 경허 스님에 대한 몇몇 평가를 인용한 뒤 "고승으로서 막행막식으로 계율을 무너뜨리고 후대 수행자들로 하여금 주색을 답습하게 한 것은 일대 과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선은 일으켰지만 불교는 깊은 병에 들게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불교는 계율 의식의 부재로 인격적 형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무리 깨달음의 세계가 위대하다고 해도 행위, 계행이 바르지 못하다면 사표(師表)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허 열반 100주년 특별기고'였던 이 글은 경허 스님이 참선 바람을 일으킨 수덕사의 거센 항의를 불렀다. 은 가을호를 전량 회수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결국 발행처인 만해실천선양회에서 폐간을 결정하고 말았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박재현 교수가 경허 스님을 보는 시각은 다르다. 박 교수는 21일 서울 조계사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리는 '경허선사 열반 100주년 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하는 '현대문제와 경허의 사상'에서 '경허에 대한 부정적인 인물평에는 식민통치 이념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경허에 대해 평가를 내린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친일 성향을 강하게 보였다'고 지적한다.

그는 경허의 행적 기록을 남긴 권상로와 김태흡을 예로 들어 '일제강점기의 심전(心田) 개발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인물'이라며 '심전개발운동은 조선인들을 일제의 정책에 순응케 하는 이른바 황국신민을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었으며 이는 단순히 생활의 개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상개조 인간개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들의 눈에 경허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주색과 관련된 경허의 일화들은 부정적으로 확대 재해석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해석한다.

이날 세미나에서 '경허의 간화선과 수행관'을 발표하는 김방룡 충남대 교수는 '경허가 깨달은 '마음'에는 선과 악, 성과 속, 부처와 중생, 깨닫지 못한 마음과 깨달은 마음 사이에 차별이 없다'며 경허에게는 진과 속의 구분이 없었으므로 '행리를 문제 삼을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경허의 제자 한암 스님은 일찌감치 "(경허의)법을 따르는 것은 좋으나 행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을 폐간해야 할 이유야 될 수 없지만, 한국불교가 그러지 못한 책임을 후대에 묻지 않고 경허 스님에게 묻는 게 타당한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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